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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 Sep 09. 2023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타는 곳

'쫌 살아보니 쫌 더 잘할 것 같습니다' 2장. 2

  태국 북동부의 중심도시 우돈타니, 2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살아갈 곳이다. 태국이란 나라도 코이카에 지원할 때 희망했던 1지망 국가가 아니듯이, 우돈타니 농업기술대학이란 학교도 내 희망과는 아무 상관 없이 정해졌다. 낯선 우돈타니라는 도시를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인구 규모로는 태국의 77개 짱왓(우리나라의 도에 해당) 중에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나름 큰 도시였다. 하지만 실제로 살아볼수록 ‘태국은 방콕 말고는 모두 촌 동네!’라는 말이 실감 났다. 태국은 또 같은 짱왓 안에서도 도심과 주변부의 경제, 문화 차이가 엄청나다. 도시 아이들은 BTS를 알고 K-POP 커버댄스 경연대회에도 참가하는데, 시골 아이들은 BTS를 몰랐다. 그 엄청난 차이를 수업 시간에도, 수업하러 오가는 길에서도 많이 느꼈다. 


  방콕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곳, 우돈타니는 태국 북동부 지역(태국에서는 이싼이라고 부른다)의 상공업 중심지라고 한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 공군기지가 있던 곳이라서 그런지 지금도 공항이 있다, 그것도 무려 International Airport! 우돈타니는 도로, 철도, 항공편이 모두 발달한 교통 중심지이기도 하다. 우돈타니엔 별로 볼만한 관광지가 없다. 기껏 뽑아봐야 시내에 있는 ‘농프라짝 호수’(러버덕으로 유명)와 좀 멀리 떨어져 있는 ‘탈레부아댕 호수’ 정도. 하지만 위치상 라오스나 베트남 북부, 중국 남부로 통하는 길목이라 거쳐 가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돈타니의 랜드마크인 센트럴 플라자(현지인들은 센탄이라고 부른다.)와 버스터미널 주변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작은 숙소들이 꽤 많다.          


                          <붉은 연꽃으로 유명한 탈레부아댕 호수-코워커와 같이 가봤다.>   


    우돈타니의 유흥가인 유디타운 쪽 카페거리에 가보면 늙수그레한 서양 노인네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들은 관광객이 아니고 은퇴한 서양 사람들이라고 했다. 베트남전이 끝나고 눌러앉거나 그때 인연으로 다시 찾아와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 그거리 카페엔 언제나 맥주 한 병을 들고 온종일 진을 치고 있는 서양 노인들이 있다. 이곳에도 전쟁의 유산은 끈질기게 남아 있었다.     


  유난히 사람 이름이나 지명을 못 외우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그것이 낯선 외국 이름이라면 더더욱…. 갑자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로 떠난 나를 걱정하는 내 친구도 그런 사람 중 하나. 그 친구와 전화는 자주 하지만 통화는 항상 비슷하게 시작했다.   

  

“안녕! 잘 지내냐?”

“응 그래. 이젠 좀 여기 더위에 적응이 되는 것 같아.”

“그래 다행이다. 그런데 니가 그…. 태국 그…. 어디에 있다고 했었지?”     

그날은 그래서 우돈타니 이름 외우기 비법을 전수해줬다.

“이 인간이! 몇 번을 얘기해야 하냐! 잘 들어! 여기는 쇠고기랑 돼지고기가 타는 곳이야! 우돈타니! 알았냐!”

“오케이 오케이! 이젠 안 잊어버리겠군. 쇠고기랑 돼지고기 잘 타고 있니? 우돈타니! 요렇게 외우면 되겠구나”

“재잘재잘…. 조잘조잘….”

우돈타니의 무까타(태국 고기 뷔페) 식당에서 고기를 구울 때마다 그 친구 생각이 자주 났었다.     

                     <무까타-우리나라 불고기판 같은 판에 육수를 옆에 붓고 고기를 무한정 구워 먹는다>

태국의 여러 짱왓에 코이카 한국어 단원들이 쫙 퍼져 있다. 한 짱왓에 딱 1명만 파견된 곳도 있고 많아야 3~4명의 단원이 파견돼있다. 그런데 우돈타니엔 일반단원 4명에 드림 단원 4명 해서 코이카 봉사단원이 8명이나 된다. 아마 태국에서 코이카 단원이 제일 많이 있는 곳이 우돈타니일 것이다. 거기에다 132기 동기 단원이 3명이나 된다. 나와 양선생 그리고 임 선생. 양 선생과 임 선생은 학교도 가까워서 같은 콘도의 같은 층에서 살기까지 했다. 그 두 분은 도시 선생이고 나는 시골 선생이었지만, 머나먼 이국땅에 동기가 3명이나 있다는 게 큰 힘이 되었다.   

   

  동기들끼리 한 달에 한 번 정도 저녁 모임을 했다. 어떤 날은 무까타 식당에서 어떤 날은 양 선생님 방에서 정겨운 모임을 했다. 난 맥주와 태국의 대중 양주 ‘쌤쏭’, 안줏거리 과일을 사 가고, 두 선생님은 주로 음식을 만들었다. 자취 내공 20여 년의 허당 임 선생 덕에 갈비찜도 먹고 연어장, 고추장찌개도 먹었다. 여러 여건은 안 좋았지만 한 도시에 동기 단원이 3명이나 같이 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일시 귀국을 할 때도 두 선생님이 환송회를 해줬다. 외로움은 자유로움의 다른 면이듯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만큼 외로움도 피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빈 곳을 채워 준 두 선생님이 정말 고마웠다.   

  

   우돈타니엔 동기가 있어서 좋았다. 언제나 모범적인 양 선생님이 있어서 흔들리는 나를 붙잡을 수 있었다. 언제나 즐거운 허당 행진으로 우울한 나를 달래준 임 선생님이 있어서 좋았다.

  동기들이 있어서 그럭저럭 버텨내고는 있었지만, 사실은 학생들이 수업에 너무 안 나와서 속상한 날이 많았다. 코워커에게 말해도 아무런 대책을 세워주지 않고, 나 또한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 속만 태우고 지내던 어느 날 이제는 내가 태국의 어디에 있는지 잘 아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녕! 잘 있지? 쇠고기랑 돼지고기가 타고 있다는 우돈타니에서 잘살고 있냐?”

“그래~ 쇠고기도 타고 돼지고기도 타고 내 속도 활활 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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