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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Nov 03. 2021

복권은 사고 말하니?

월요일 아침. 출근하면서 회사 옆 단골 슈퍼에 들렀다. 커피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가자 주인아저씨가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건넨다. 나도 모르게 한숨부터 나오며 '글쎄요'라고 하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무슨 일이 있느냐 묻는다. "별일은 없는데... 요즘 일이 너무 많고 스트레스도 많아서요... 로또나 되면 좋겠어요." 마지막 말에 아저씨는 웃음을 터트리더니 예상치 못한 반문을 했다.


"복권은 사고 말하니?"


듣고 보니 황당해서 나 역시 웃으며 답했다. "아니요. 안 사는데요..." "복권도 안 사면서 당첨되기를 바란단 말이야?" "위만 올려다보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일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 받을 때는 지금 일이 없어서 고민일 사람들을 떠올려봐." "그러니까요. 이전에 다른 곳에서 일을 할 때는 지금 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꿈꿨는데..막상 원하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는데도...여전히 불평이네요."


아저씨와 잠시 웃으며 수다를 떨고 나니 주말 내내 걱정하던 마음이 잠시 평온해지는 걸 느꼈다. 얼마 전부터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이 분야의 경력도 얼마 되지 않으며 회사의 유일한 외국인인 내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펼쳐지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싶은 걱정과 불안에 하루에도 수십 번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고 있다. 그러더니 얼마 전부터 엉뚱한 로또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로또나 되면 좋겠다"




먹고살아야 하는 것도. 그래서 꼭 일을 해야만 하는 것도. 현재 경제적 가장의 역할을 하며 어깨가 무거운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하는 일이 반드시 돈 때문에 하는 건 결코 아니면서. 훨씬 더 안정적인 직장도 지금 같은 직장을 꿈꾸며 떠났으면서도. 마치 돈 때문에 일하고 돈 때문에 사는 양 로또 타령을 하는 나 자신도 웃기지만, 더 웃긴 건 그 말을 하면 한결같이 돌아오는 대답이다. 회사에서도 동료에게 했더니 바로 돌아왔다.


"로또나 사고 말하니?"


어쩌면 다들 저렇게 미리 짠 것처럼 같은 답변을 할 수 있을까. 내 얼굴에 '로또 안 사는 사람'이라고 적혀있나. 그것도 아니면 '로또도 안 사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이라고 쓰여있나. 한 번은 "아니. 안 사지만 그래도 되면 좋겠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릴 했더니 동료가 받아쳤다. "당첨된 사람들은 100 퍼센트 복권을 샀습니다." 십 년도 더 된 로또 문구이지만 여전히 이곳에서는 전설로 남아 관용어처럼 쓰이는 문장이다.


복권을 내 손으로 산 적은 손꼽을 정도이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 돈 아깝게 사서 뭐하나 싶기도 하지만. 사실 복권에 담청 되는 상상만 해도 기쁜 마음보다는 덜컥 겁이 나기 때문이다. 남편은 유럽 여러 국가에서 함께 하는 유로밀리언을 종종 사는데. 그것도 제일 큰 금액이 걸렸을 때만 산다. 당첨액이 몇 백억에서 어쩌다 간혹 몇 천억까지 될 때도 있는데, 간이 콩알만 한 나는 그 어마어마한 금액이 무섭다. ‘그 돈을 어디다 써?’


막상 그렇게 많은 돈이 생기면 지금처럼 돈 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겠지만. 돈이 우리를 통째로 꿀꺽 삼켜 버릴 것만 같다. 결국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지레 겁부터 먹고 도망칠. 딱 그 정도의 그릇이라 로또 타령만 하지 결코 사지는 않는다. 그러니 실질적인 당첨 확률은 0 퍼센트인 셈이다.




순전히 운이라고 말하는 로또 당첨도 복권을 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복권을 사도 당첨 확률은 희박하지만 복권을 사지 않고서는 그 확률마저 없다. 삶에서도 도전해도 실패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도전조차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도전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도전하고도 실패할 게 두려워 미리 겁부터 먹고 뒷걸음질을 한다. 그렇게 요즘 매일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붙잡고 싸우고 있다.


인생의 모든 일에는 대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부쩍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원하는 삶을 사는 것도.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 그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다니는 직장도. 원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며 살아가는 삶도 대가가 있기는 매한가지이다. 어떤 대가를 기꺼이 치를 것인지를 선택하고 감수해야 하는데. 복권도 안 사고 당첨을 바라는 것처럼. 대가를 치르지 않고 모든 걸 얻고 싶다는 심보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복권을 사서 기적적으로 당첨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인생에서 뭘 바꾸고 싶을까. 스스로에게 물을 때면 돌아오는 답은 늘 같다. 크게 바꾸고 싶은 게 없다. 로또를 맞아도 바꾸고 싶은 게 없는 인생이라면. 이미 로또 맞은 인생일지도 모르는데. 그럼에도 로또 타령을 하는 건 환영에 사로잡혀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딘가에는 대가 없는 인생이 존재한다는


로또 일등 당첨된 이들의 결말을 종종 들으면 당첨에도 대가가 존재하는데 말이다. 로또 타령을 하도 하니 얼마 전에 동료가 제안했다. "이번 주에 유로밀리언이 거액의 당첨금이라는데, 같이 사서 해볼래? 되면 당첨금을 반반 나눠 가지는 거야. 어때?"


그래도 복권은 안 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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