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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Nov 15. 2021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눈을 의심했다. 심장이 뛰었고 보는 사람도 없는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당혹스러웠고 수치스러웠다. 어떤 감정이 더 큰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함께 일하는 여러 사람이 참조로 들어가 있는 업무 메일이었다.


"이름이 너무 길고 어려워서 그런데 줄임말 없어요?"


알파벳으로 하면 정확히 9글자이다. 수많은 프랑스 이름이 그보다 더 길다. 내 이름을 한 번에 발음하거나 외울 수 있는 서양인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거에 대해 미안해하며 재차 묻고 외우려고 노력했지 줄임말이 있냐고 물은 적은 없었다. 간혹가다 프랑스 이름은 없냐고 묻는 이들은 있었지만 없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했다. 프랑스 회사에서 유일한 외국인으로 몇 년 동안 근무하면서도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답장을 썼다.


"줄임말 없고요. 저는 제 이름을 좋아해요"


마지막에 스마일 이모티콘까지 붙여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답했다. 곧 답변이 왔다.


"알겠어요. 그러면 외우려고 노력할게요."


실수였겠지. 본인도 실수했다는 걸 느꼈나 보다. 황당함은 찝찝하게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노력한다는데 하며 넘어갔다. 새로운 프로젝트로 얼마 전부터 함께 일하게 된 외주 감독이고 잘 모르는 사람이라 더 난감했다. 다음 날 점심을 먹으며 회사 프랑스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그녀들이 오히려 더 격분했다. "그게 네 이름인데 무슨 줄임말을 달라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처음에 이 회사에 들어오고 프랑스 동료들이 전혀 익숙하지 않은 한국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고 외우기까지 결코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두 번 물어보면서도 내 이름을 다시 물어보는 것 자체에 대해 미안해했고. 세 번은 물어보지 않기 위해서 몰래 다른 동료에게 가서 물어보고 연습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 중단 한 명도 없었다. 다른 프랑스 이름이 있냐고 묻거나. 줄임말은 없냐고 하는 이는.




내 이름이 프랑스인들뿐 아니라 서양인들에게 발음하기 쉽지 않다는 걸 충분히 자각하고 있음에도 조금 더 발음이 쉬운 이름을 쓰지 않는 데는 여러 계기가 있었다. 처음에 프랑스 유학 와서 발음상 편의를 위해 이름 대신 성을 이름처럼 사용했는데.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친구들이 내 이름을 전혀 모르는 일이 발생했다. 누군가 말했다. '네 책임이야. 우리에게 성만 가르쳐줘서 그래'


그들의 편의를 위해서였지만. 정말 내 책임이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내 소중한 이름을 정작 이곳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모른다는 건 옳지 않았다. 그 이후 워킹 헐리데이로 떠난 호주에서도 교환학생을 떠난 미국에서도 철저히 이름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희한한 현실을 보게 되었다. 호주나 미국에서 영어 이름을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은 동양인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중에서도 한국인과 중국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 기숙사에서는 역으로 따지는 미국인도 있었다. "다른 동양 애들은 다 영어 이름이 있는데 너만 왜 없어. 빨리 하나 만들어. 네 이름 발음 못하겠어." 십 년도 더 넘은 일이라 뭐라고 대꾸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량 나는 그럴 의사가 없고. 그게 내 이름이니 노력해 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는 노력하지 않았고. 나도 끝까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서서히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온 친구들의 이름도 서양인들에게는 동양 이름만큼 어렵고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아무도 일부로 영어 이름을 만들어 쓰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그들에게 왜 발음하기 쉬운 영어 이름을 만들지 않느냐고 따지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동양인들은 영어 이름을 만드는 걸로도 부족해서 그들끼리 있을 때도 서로를 종종 영어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존, 제니, 알렉스..


우리끼리만 있는데도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고 정작 상대방의 한국 이름은 알지도 못하고 헤어지는 일까지 발생하는 걸 보면서. 단지 이름의 문제가 아닌 문화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문화에 살면서 적응하고 맞춰가야 하는 것은 외국인이자 이민자의 몫이지만. 자신의 고유의 정체성을 나 스스로 지키고 존중하지 않으면 현지인들에게도 결코 존중받을 수 없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이름이었다.




그렇게 감독과의 메일 사건이 일단락되고 다 끝난 일인 줄 알았는데, 지난주 화상 회의 중 감독이 나를 부르다가 말했다.


"그런데 정말 줄임말 없어요? 프로덕션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 다 저 이름으로 부르는 거 아니죠?"


함께 일하는 프로듀서와 다른 동료가 즉각 단호하게 "저희는 다 이름으로 부르는데요"라고 하자 그는 "아니 이렇게 길고 어려운데 말도 안 돼"라며 고개를 저었다. 나 역시 톤을 조금 높여 말했다. "그게 제 이름이에요. 저는 제 이름이 좋아요. 무슨 문제 있으시나요?" 그는 "아니 왜 이렇게 이름에 집착하는 거야"라며 웃어넘기려 했지만. 그 화면에서 웃는 건 오직 자신뿐이라는 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다른 회의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보다 못해 프로듀서가 나섰다.


"올리비에. 당신을 '오'라고 줄여서 부르면 좋겠어요. 그거랑 똑같은 거지요."


그리고 다른 회의 주제로 넘어갔지만, 나는 이미 귀까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대규모 프로젝트에 나름 중요 직책을 맡아 참여하고 있지만. 유럽을 주제로 한 유러피언 프로젝트에 외국인을, 유럽인도 아닌 동양인이 참여하는 걸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을 초반에 적잖이 받았다. 회사 내부에서는 다행히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 파트너사나 외주 인력은 달랐다. 매일매일이 시험이었다.


오전 줌 회의에서 느꼈던 언짢음이 채 가시기도 전 감독에게 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열자마자 그 자리에게 굳었다. 내 이름 대신 제멋대로 줄임말을 만들어 보낸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친절하게도 단호하게도 답할 단계가 아니었다. 아주 잠깐. 일도 너무 많은데, 이걸로 일을 또 만들고 에너지를 써야 하나. 혹 이것 때문에 잘못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바로 고개를 저었다.


혹여나 이걸로 프로젝트에서 잘리는 일이 있더라도 이건 아니었고. 그런 이유로 잘릴 거라면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게 맞았다. 깊은 심호흡을 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뚜.. 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당장 전화를 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잠시 후 그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를 낮게 깔고 최대한 차분히 말을 시작했다. "이게 마지막이에요.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 들어요?" 그는 단지 농담이었다고 했다.


거기서 폭발했다. "농담이라고요? 하나도 안 웃기고 모욕적인데요. 이름 때문에 저랑 일하는데 문제가 있으면 지금 당장 말해요. 당장 말하라고요. 그게 아니라면 여기까지예요. 알아 들었냐고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을 처음 본 동료들은 놀라서 달려왔고. 나는 충격받은 그가 뭐라 뭐라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전화를 끊었다.




동료들이 놀라고 걱정하는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묻자 정황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참을 수 없을 만큼 눈물이 솟구쳐 나와 그 자리에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순간 사무치게 서러웠다. 내 이름으로 불러 달라는 당연한 요청이자 권리를 이렇게까지 분노하며 요구해야 하는 것인가. 동료들은 위로하며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었고 진심으로 자신의 일처럼 함께 분노해 주었다. 인종차별이라며. 아주 잘했다며. 내가 옳다며.


나를 이 프로젝트에 고용한 프로듀서도 이 일로 오랫동안 함께 했던 감독과 불편해질 수도 있음에도 전화해서 말했다. '네가 잘했어. 네가 옳어.' 그 누구도 '왜 그런 일로 그렇게까지 했어'라든가 '오버한 거 아니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감독이 짧은 사과 메일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동료에게 문자를 받았다.


너는 재능 있고 프로페셔널 한 사람이야. 너는 그 누구에도 존중받아야 마땅해. 우리 모두는 너와 함께 해


문자를 보고 이불 속에서 펑펑 울었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내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싸워야 하나라는 그 전날의 서러움이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씻겨 나갔다. 동료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함께해 줄 수 있는 사람들. 똑같은 프랑스인들이지만 이건 인종차별이라며 격분하고 자신의 이익이 걸린 상황에서도 나를 보호해 주려는 사람들. 그러자 이 일이 상처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감독과 일 때문에 직접 만났다. 동료들은 걱정하며 '그 사람이랑 계속 일할 수 있겠어?'라고 물었지만 이제 나는 정말 괜찮았다. 다시 만난 그의 눈빛에서 존중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싸워서 얻어낸 존중이긴 하지만. 그의 눈에 나는 더 이상 정체성을 무시해도 좋을 그저 착한 동양인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이후로 얼마나 피나게 연습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한국 사람만큼 유창하게 내 이름을 발음한다.


사는 게 참 쉽지 않고. 매일매일이 시험이지만. 이번 일로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 '네가 옳아. 잘했어.'라고 말해주는 사람 몇 명만 있다면 그 시험을 달게 이겨낼 수 있다고. 기꺼이 나아갈 수 있다고. 덕분에 나는 얼마나 그런 사람이었는지 되돌아보고 뉘우치는 계기도 됐다. ‘네가 옳아’ 그 단 한 마디 덕분에 마음에 응어리가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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