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이제 곧 크리스마스야"
그는 휜 이가 드러나게 씩 웃으며 말했다. 한 여름. 그것도 찌는 무더위에 뭔 놈의 크리스마스라는 건지. 생뚱맞다고 생각했지만. 깜깜한 마음 한켠에 트리의 불이 켜지며 잠시나마 환해지는 듯했다. 그의 크리스마스는 삶이 힘들 때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찾아왔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곧 크리스마스라며 천연덕스럽게 미소 짓는 그를 보며. 실제로 크리스마스까지는 얼마나 남았나 세어 보곤 했다.
크리스마스
이 다섯 글자에는 그런 힘이 있다. 언제 들어도 설레게 만드는. 그때가 되면 다 괜찮아질 거라 굳게 믿게 만드는 마법이. 산타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까마득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크리스마스라고 별거 없다는 걸. 여태껏 수십 번의 크리스마스를 반복하며 더 이상 속지 않을 만도 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는 기분 좋은 판타지는 나도 모르는 내 안 깊숙이 남아 있는지. 그의 말이 힘이 되곤 했다.
하지만 12월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되자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 노래를 부르던 그에게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괜스레 속은 느낌이었다. 먼저 연락을 했다. "이제 크리스마스네". 그에게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짧은 답변만 왔다. 살짝 김이 빠졌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가 춤이라도 출 줄 알았을까.
작년에는 이브 새벽부터 남편이 아프기 시작해 크리스마스를 응급실에서 보내야 했다. 보호자는 병원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된다는 방침에 크리스마스트리 하나 없는 휑하고 스산한 병원 부지를 매서운 추위 속에서 덜덜 떨며 배회하며. 불행이 모두가 축복하는 날에 닥치면 얼마나 더 가혹하고 잔인할 수 있는지를 뼛속까지 느꼈다.
하늘에 대고 삿대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크리스마스잖아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참 뭐 같은 한 해에 어울리는 암담한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했다. 며칠을 마음을 졸이고 남편이 쉬는 동안 크리스마스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를 보는데 어느 순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산타를 더 이상 믿지 않는 한 아이가 북극행 크리스마스 특급 열차에 올라타서 산타 마을에 가는 따뜻하고 행복한 내용이었는데, 함박눈처럼 굵직한 눈물이 내렸다.
그게 그때 그렇게 큰 위로가 될 수 없었다. 현실 속 크리스마스는 냉혹하고 차가웠지만 화면 속 크리스마스는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100분의 시간 동안 그 마법의 세계 속에 풍덩 빠져서 잠시 모든 걸 잊고 행복했다. 크리스마스 때면 티브이를 틀고 이불 속에서 특선 영화와 만화를 보던 어린 시절로 잠시 돌아간 것 같았다.
단순히 산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믿음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 믿음이 절실했다.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고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남편이 회복하자 기적은 크리스마스에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하고 사랑하는 모든 날들이 다 기적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시부모님 두 분 다 코로나에 걸리면서 남편과 온전히 둘이서만 보냈다. 다행히 두 분 다 가벼운 감기 증상에 그치고 빠르게 회복 중이시지만, 올해의 크리스마스도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소규모 인원으로 가족 식사라도 하려고 했던 크리스마스 계획은 이브 전날에 무너졌고. 미리 준비한 선물이라도 크리스마스 날 시부모님 현관 앞에 두고 올까라는 말에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게 더 우울할 거라고 기다리자고 했다.
크리스마스는 분명 특별한 날이지만. 병이라고. 바이러스라고. 크리스마스를 피해서 비껴가 주지는 않았다. 그 사실은 달력에 찍힌 나머지 363일과 다르지 않았다. 산타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았고. 크리스마스라고 기적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북극행 크리스마스 특급 열차가 우리 집 앞에 서서 경적을 울린다고 해도, 나는 기차에 타기는커녕 창문 밖을 내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늘 그랬던 것처럼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기다릴 것이다. 산다는 게 유달리 힘들게 느껴질 때면. 그때 그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에게 말해줄 것이다. "괜찮아. 곧 크리스마스야." 그에게 중요했던 건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모든 날들이었고. 그날들은 버티고 감당해야 하는 삶의 대부분의 날들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