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진하게 몰려오는 우울감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떤 공허감에 사로잡혀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한 해 동안 예고 없이 수시 때때로 몰려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침몰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허우적거리다가. 그래 봤자 망망대해 안에 목적 없이 떠다니는 뗏목이라는 생각이 가시처럼 마음을 찔렀습니다.
쓸쓸했고. 허무했습니다. 일 년이라는 세월 중 절반이 통째로 잘려나간 느낌이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그 어느 해보다 열심히 살았고. 하반기에는 미친 듯 일했지만. 정작 몸과 마음을 돌보는 데에는 소홀했고. 글에서도 자연히 멀어졌습니다. 현실에 함몰되어 매일매일을 보내며. 녹초가 되어 밤늦게 집에 들어와 스스로에게 묻곤 했습니다.
산다는 게 뭐길래 단 하루도 쉬운 날이 없을까.
그러다 얼마 전에 동생이 통화를 하면서 말하더군요. "얼마 전에 어디서 보니까, 언니가 올해까지 삼재였더라고." 삼재. 그게 뭐라고. 그런 거 믿지도 않았으면서. 어쩐지 안심이 되면서 위로가 됐습니다. 반색하며 물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힘들었나. 그러면 내년에는 괜찮아지겠지?" "응. 올해가 삼재가 나가는 해래." 믿지도 않는 사주에 악재가 껴서 힘들었다는데. 이토록 기뻐하는 자신이 웃기면서도 조금 슬펐습니다.
삼재가 시작되었다는 2019년은 새해의 시작과 함께 비보를 전달받았습니다. 사하라 사막 보도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였던 젊은 유목민 뮤지션의 사망 소식이었습니다. 밤 내내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나보다 너 젊고 반짝반짝 빛나던 그의 죽음이 안타깝고 억울했으며. 너무도 당연하게 잊고 사는 죽음이 이토록 우리 가까이 도사리고 있다는 자각에 몸을 떨었습니다. 다음 해에 코로나가 터지고 전 세계가 셧다운이 되고 매일 같이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지난 두 해는 모두에게 힘든 해였습니다. 2020년 코로나로 전 세계가 힘들었고. 2021년은 백신 덕분에 모든 게 곧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는 희망과 기대로 시작했다가 하반기가 되자 강력한 변이 바이러스에 다시 술렁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 누군가 빨리 2022년 연말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때면 이 모든 게 끝날 거라는 믿음에서 한 이야기였겠지만. 지난 연말에도 비슷한 대화를 나눴던 게 떠올라서 쓸쓸했습니다.
2020년 두 달 가까운 첫 번째 봉쇄가 끝났을 때만 해도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물론 백신 패스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은 분명 이전의 세상과는 다르지만. 좀 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변할 거라는 믿음은 개인적인 바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아주 먼 훗날이 돼서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21년의 마지막 날 밤은 간만에 평온한 잠을 잤습니다. 하루가 있고 달이 있고 또 해가 있다는 것. 그리하여 새해에는 다 괜찮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올해는 저의 삼재도 끝나고 세상의 삼재도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운 이들도 보고 그리운 거리도 걷고. 모락모락 연기 나는 시장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막걸리에 순대를 먹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욕심을 내보자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닫혔던 마음이 열리듯 닫혔던 국경이 다시 열리게 되면. 작고 큰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부서진 마음을 한데 모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그런 멀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어디서든 모두 다른 듯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위안으로 다가오는 그런 여행을요.
마지막으로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산다는 건 작고 큰 상처들을 끊임없이 받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이 모두의 일상에 눈처럼 소복이 쌓여, 눈 위를 걷듯 행복의 발자국을 남기며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2022년의 끝자락에 뒤를 돌아봤을 때, 촘촘히 남겨진 하얀 발자취를 보며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내년도 올해만 같으면 좋겠다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