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정말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서 유학을 가서 다행이야.”
나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으로 유학을 간 친구와 연락을 할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다. 한국과 싱가포르의 시차는 약 1시간이고, 싱가포르와 미국의 시차는 대략 12-13시간 정도 된다. 가끔 내가 밤늦게까지 할 일을 하느라 깨어 있으면 지구 반대편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친구와 길게는 3시간 동안 통화도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는 했다. 유학 초기에는 생각보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는 연락이 잘 안 돼서 힘들었던 적도 있었는데 정작 반나절의 시간이나 차이 나는 이 친구와는 연락이 이렇게나 잘 되다니!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새삼스러웠다.
요즘은 인터넷만 연결되면 채팅은 기본, 음성통화와 영상통화까지 바로바로 연락이 되니 참 다행이다. 덕분에 부모님께도 내가 오늘은 무엇을 먹었고 어디를 갔고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바로바로 알려드릴 수 있으니, 부모님도 한 시름 덜으실 테고. 가끔 한국에 있을 때는 싱가포르 친구들과도 쉽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참 신기한 세상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줌이나 구글 미트와 같은 화상 채팅도 더욱 원활해져서 정말 어디에 있든 누구와도 커넥션을 만들 수 있는 시대임을 실감한다.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의 게으름의 비례한다고 나는 늘 생각하는데, 초등학생 때 해외여행을 가거나 짧게 어학연수를 다녀왔던 친구들과 연락을 어떻게 했나 되짚어보면 더더욱 기술의 발전을 느끼게 된다. 내가 초등학생 때 가끔 미국이나 캐나다로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왔던 친구들이 종종 있었는데, 인터넷이 막 익숙해질 무렵이라 서로의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아서 편지를 주고받듯이 보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앱 알림 설정만 하면 채팅 못지않게 바로 답장을 주고받았겠지만 그때는 직접 도메인에 접속을 해야 했으니 이메일을 보낸다고 해도 답장을 받기까지는 꽤나 걸렸던 것 같다(더욱이 초등학생이었으니 더 서툴렀을 테다). 그리고 정말 큰 마음먹고 아주 짧은 몇 분 동안 국제전화를 걸기도 했다. ‘요금이 아주아주 비싸다’는 것만 알고 있던 나이라 전화를 받는 친구에게 짧은 몇 마디만 나누고 끊었어야 했지만 수화기 너머 ‘여보세요’ 해주던 친구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그 어린 나이에도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아무리 극단적인 내향 인이어도 본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꾸준한 교류는 필요하다. 만약 내가 이러한 기술의 편의성이 발달되기 전에 유학을 떠났다면 어땠을까? 종종 생각해본다. 아마 가족을 비롯한 보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때로는 눈물도 많이 삼키면서 지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현재의 나의 상황은 감사가 넘치는 현실이다. 좋아하는 사람들, 보고 싶은 사람들을 여전히 쉽게 만날 수는 없지만 내가 그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연결감’ 하나만으로 삶은 버틸만하다. 나도 잘 지내고 있고 그대들도 잘 지내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몸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안부를 자주, 그리고 빨리 주고받다 보면 ‘그래도 이 사람이 별일 없이 잘 지내는구나’라고 안도하게 되면서 ‘오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별일 없이 연락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감사함으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오늘도 돌아가는 길에 잘 지내고 있다고 연락을 해야겠다. 물리적 거리가 아닌 심리적 거리의 중요성을 더욱 체감할 수 있는 시대라서 다행이다. 사소한 연락 하나로 누군가의 삶을 안정되게 할 수 있으니까. 저는 잘 지냅니다. 안부 잘 주고받아봐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