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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딘 Jan 15. 2023

8. 냄새와 습관


내가 후각이 실제로 예민한 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특정 공간마다 특유의 냄새가 존재한다. 가령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하면 나를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터미널 특유의 ‘냄새’다. 공항 냄새를 맡은 후에는 내가 한국에서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왔다’고 실감하게 된다. 실제로 냄새는 어떤 공간이나 사람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하다. 싱가포르의 대표 쇼핑몰 중 하나인 ION은 고객에게 자신들의 공간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ION몰 특유의 향을 제조해서 백화점 곳곳에 뿌려두었는데, 실제로 이 몰에 방문하면 ‘내가 이곳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공간을 떠올리면 냄새도 같이 떠오르는 건 덤이다. 



공간의 인위적인 냄새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종종 ‘계절 냄새’를 언급한다. 그중 대표적인 건 ‘겨울 냄새’. 찬 공기가 코 끝을 스쳐나가는 그 시린 느낌이 체감되면 비로소 ‘겨울이구나’를 깨닫게 된다. 반대로, 혹시 ‘여름 냄새’를 좋아하는 분들은 계신지? 내가 여름 나라에서만 5년 이상을 살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여름 특유의 냄새를 좋아한다. 구체적으로는 ‘여름밤 냄새’. 싱가포르는 특히 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밤에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해가 진 후의 선선한 바람 냄새와 식물들의 냄새가 엉키면서 형성하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1년 동안 변치 않는 계절에서 오는 안정감 때문인지, 싱가포르에서 거주하면서 밤에 산책을 하고 있으면 이곳에서 느끼는 특유의 편안함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곳에서 5년 이상을 혼자 살았더니 싱가포르에서 살고 있는 집에 오면 나만의 루틴이 있다. 빨래는 어떻게 하고, 밥은 어떻게 차려 먹고, 청소는 어떻게 하는지. 해외 자취 경력 5년 차, 이 정도면 살림력에 자부심을 느낄만한 경력이 아닌가! 부모님께 ‘나는 생각보다 혼자 야무지게 잘 산다’고 늘 주장하지만 부끄럽게도 본가에 돌아갈 때마다 살림은커녕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이기에 여전히 우리 부모님은 나의 생활력에 의심이 많다. 




‘네가 하는 말을 도통 믿을 수가 있어야지. 집에서 하는 모습 보면 영 ….’ 그러게. 나는 왜 싱가포르에서는 혼자 잘 살면서 본가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는 걸까? 처음에는 단순히 ‘본가에는 부모님도 있고 나는 이 집도 잘 모르고(상대적으로 거주한 시간이 적으니) 해야 할 일도 많고 어쩔 수 없지 않나’ 싶었는데 이번에 싱가포르로 다시 돌아오면서 깨달았다. 이 나라의 냄새를 맡는 순간 나의 마인드셋과 생활 태도랄까, 그런 것들이 다시 ‘혼자 지내는 유학생’으로서 세팅이 저절로 되었다는 것. 조금은 우스울 수도 있는 이유지만, 특정 나라의 냄새를 맡으면서 이곳에서 생활한 나의 행동들이나 습관들이 저절로 환기된달까.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를 돌이켜보면 어린 나이었지만 - 오히려 그랬기에 - ‘나를 챙길 수 있는 건 오직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아프지 않아야 했고, 밥도 알아서 잘 챙겨 먹어야 했고, 집안일도 알아서 해야 했다. 게으름을 피워봤자 치우고 해결해야 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니까. 그 시간들이 쌓여 이제 이 나라에 발을 내딛고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알아서 내 할 일을 알아서 하는 사람이 된 걸지도 모른다. 조금은 슬프지만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그냥 문득 드는 생각은 먼 훗날 내가 이 나라에 올 일이 있어 다시 방문해도 그런 식으로 행동하려나? 그 부분은 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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