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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딘 Oct 26. 2022

5. ANYHOW의 마음으로


‘영어’는 수많은 언어들 중 하나일 뿐, 그 자체로 문화나 민족이 될 수는 없다. 같은 영어를 쓰더라도 나라마다 악센트나 발음, 사투리 같은 슬랭이 조금씩 다른 것이 당연하다(미국식 영어라든가 영국식 영어와 같은). 싱가포르에 지내면서 제일 적응이 안 되었던 또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이 싱가포리언들의 영어, ‘싱글리쉬’라고 할 수 있겠다.


싱가포르는 크게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이 세 민족이 주로 이루고 있기에 인종에 따라 사용하는 싱글리쉬도 조금씩 다르다. 영어인데 뭔가 중국어 같이 들리기도 하고, 인도 언어처럼 들리기도 하고, 심지어 사용하는 단어나 문법도 예상치 못하게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포장’을 뜻하는 단어인 ’Tapao'를 ‘take away' 대신 사용해서 ’Can I tapao?'로 바로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이 문장은 참고로 음식을 포장해도 되는지 물어볼 때 자주 사용한다). 그리고 대표적인 특징이 말 끝에 -lah나 -leh를 붙이는 것인데, 이게 은근히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lah는 긍정의 의미일 때, leh는 부정의 의미라나. 그래서 긍정의 의미로 질문할 때는 'Can lah?’, 할 ‘수 없다는 의미를 포함할 때는 Can not leh' 이런 식으로 사용한다(나는 아직 이 슬랭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


물론 싱가포리언들 중에는 싱글리쉬를 거의 구사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지만 내 친구들은 싱글리쉬 억양이 매우 강한 친구들이라 악센트, 발음, 슬랭까지 어쩌다 보니 직접적으로 들으며 지내는 중이다. 그중에서 최근에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바로 이 “anyhow”다.  


이 단어는 말 그대로 ‘어떻게든’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데 역시 또 아무 데나 갖다 붙여야 맛이 산다. 마치 I did ANYHOW!처럼. 우리말로 따지면 대충 ‘나 진짜 그냥 막 했어!’ 혹은 ‘어쨌든 했잖아?‘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아주 매력적인 단어다. ‘너 과제 어떻게 잘했어?’ ‘아니 나 그냥 막 했어!’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단어를 찾은 것도 만족스럽지만, 개인적으로 ‘어쨌든 해냈다’로 사용할 때의 의미를 더 좋아한다. 친구와 가끔 막막하고 쉽지 않은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도 ‘Anyhow we survived’와 같은 문장이 나오면 ‘그래 어쨌든 고비는 넘겼지’ 싶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해야 할 일을 목록을 적어가며 체크하는 계획형 인간이지만 그것을 지키는 실행력은 별개의 문제라 늘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지주 직면하고는 하는데, 신기하게도 막상 펑크를 내거나 마감을 못 맞춘 적은 없다. 가끔 ‘정말로 내가 이 마감을 지키지 못해서 결과가 안 좋게 나온다면?’의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만 늘 고비는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나의 모습을 몇 년 동안 반복하면서 이제는 ‘적어도 난 어떻게든 기한은 지키지’라는 최소한의 자신감이 학습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계획이 틀어져서 해야 할 일이 오히려 더 쌓이는 상황이 와도 ‘그래도 나는 늘 어떻게든 해내니까!’라는 자세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Anyhow we did! 어떻게든 할 일은 끝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않고 적당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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