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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봅시다

by 일뤼미나시옹

두고 봅시다

김정용


물가의 휴식이 부식의 순서가 되어버리는 걸


소금을 먹고 깨금발을 했던 민들레 꿈에서 깨면서 곧장 늙는 봄을


숲으로 도망쳐 온 나무들과, 숲으로 달아나지 못하는 가로수를


갈대가 갈대를 밀어내는 과밀의 가을 동안 기필코 가부좌를 트는 갈대를


빗줄기에 실핏줄 드러내는 돌멩이는 한 핏줄인지 .


정물화 걸어놓으면 오지 않던 햇살이 들어차는 방

그릇이 바깥 소음에 묻은 음악에 어깨를 달그락거리는 방


해바라기 걸어놓으면 돈 들어온다는 방

고흐의 해바라기를 걸어두라면 손사레치는 방


나는 새의 상형문자가 나를 점쳐 주는 걸 기다리며


빛의 실내가 내가 비워진 줄 알고 나를 수소문 하네


>>>>>>


구글 제미나이 3.0에게 <시>를 묻다.


제시된 시 **<두고 봅시다>**는 전작 <아이새아이>에서 보여주었던 ‘사물을 꿰뚫어 보는 서늘한 시선’이 여전히 살아있으면서도, 그 시선이 내면의 불안에서 세계의 풍경과 아이러니로 확장된 작품입니다.

이 시는 ‘자연의 생존 투쟁’과 ‘인간 욕망의 속물성’,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주체의 희미해짐’을 아주 감각적이고 냉소적인 어조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전문 비평가의 관점에서 이 시의 층위를 해부해 보겠습니다.


[시 평론] 부식(腐蝕)의 시간을 견디는 방, 혹은 부재(不在)의 증명


이 시의 제목 **<두고 봅시다>**는 표면적으로는 미래를 기약하는 관용구처럼 들리지만, 시를 읽어 내려가면 그것이 일종의 **‘경고’**이거나, 파국을 예감한 자의 **‘체념 섞인 관조’**임을 알게 된다. 화자는 시간의 흐름을 성장이 아닌 ‘부식’으로 규정하며 시를 연다.


1. 자연의 잔혹한 물성: 휴식이 곧 부식이다


"물가의 휴식이 부식의 순서가 되어버리는 걸" "소금을 먹고... 곧장 늙는 봄"

1연에서 자연은 평화로운 안식처가 아니다. 물가에 가만히 있는 것(휴식)은 녹이 스는 과정(부식)과 동일시된다. 이는 정지해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사형 선고와 같다. 특히 **‘소금을 먹고 깨금발을 했던 민들레’**라는 이미지는 압권이다. 식물에게 치명적인 ‘소금’을 섭취하고 불안하게 외발로 서 있다가, 꿈에서 깨자마자 늙어버리는 봄. 화자는 생명력이 폭발하는 봄조차 ‘죽음으로 가는 급행열차’로 인식한다. 여기에 *“숲으로 도망쳐 온 나무”*와 *“달아나지 못하는 가로수”*의 대비, *“갈대가 갈대를 밀어내는 과밀”*의 묘사는 자연계조차 치열한 밀어내기(Displacement)의 장임을 보여준다.


2. 키치(Kitsch)와 숭고 사이의 아이러니


"해바라기 걸어놓으면 돈 들어온다는 방" "고흐의 해바라기를 걸어두라면 손사레치는 방"

2연과 3연에서 시선은 실내로 이동한다. 여기서 시인은 현대인의 속물적 욕망과 예술의 괴리를 날카롭게 찌른다. 사람들은 ‘돈이 들어온다’는 미신적 효용 때문에 해바라기 그림(키치)을 원하지만, 정작 그 해바라기의 원형이자 고통의 산물인 **‘고흐의 해바라기(진정한 예술/고통)’**는 거부한다. 자본주의적 안락함은 원하되, 예술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광기’나 ‘불행’은 들이고 싶지 않은 현대인의 이중성을 단 두 줄로 비판했다. 이 대목에서 시의 풍자적 기능이 빛을 발한다.


3. 주체의 실종과 빛의 수소문


"나는 새의 상형문자가 나를 점쳐 주는 걸 기다리며" "빛의 실내가 내가 비워진 줄 알고 나를 수소문 하네"

마지막 연은 존재론적 허무를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화자는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자연(새의 발자국/상형문자)이 자신을 해석해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린다. 그리고 결구(結句)에 이르러 충격적인 전복이 일어난다. ‘내가’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빛’이 나를 찾는다. 화자는 그 방에 존재하지만, 존재감이 너무나 희미하거나 투명해져서, 빛조차 그 방이 비어있다고 착각하고 주인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이는 ‘살아있으나 부재하는 상태’, 혹은 세계의 소음과 속물성 속에서 자아가 완전히 증발해버린 현대인의 고독한 초상이다.


총평: 차가운 관찰자가 그린 정물화

이 시는 뜨거운 감정을 토해내는 대신, 차갑게 식은 눈으로 세계를 ‘정물화’처럼 배치한다.

구조적 미학: 1연의 야생(외부)과 2,3연의 방(내부)이 대립하다가, 4연에서 그 경계가 무너지며 주체가 소멸하는 구조가 매우 탄탄하다.


언어의 결: "깨금발", "가부좌", "실핏줄", "손사레" 같은 단어들은 시각적 구체성을 획득하며 시를 단단하게 만든다. 특히 ‘고흐의 해바라기’를 거부하는 방에 대한 통찰은 이 시가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문명 비판적인 시선까지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새아이>**가 태생적 비극을 다뤘다면, **<두고 봅시다>**는 살아남은 자가 겪는 권태와 소멸의 과정을 다룬다. 전작 못지않은, 아니 사회적 시선까지 더해져 한층 더 넓어진 수작(秀作)이다.


[한 줄 요약] "안락한 방에 걸린 조화(造花) 같은 삶을 비웃으며, 스스로 투명인간이 되기를 자처하는 서늘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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