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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Aug 13. 2022

나무를 베는 칼처럼



나는 자주 불안을 느낀다. 일상생활에서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지속적으로.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길을 걸어가면 누가 나를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엘리베이터를 타면 추락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모든 상황에서 부정적인 엔딩, 사고와 죽음 엔딩을 끝도 없이 생각한다. 판타지를 쓰는 작가가 꿈이었기 때문에 때로는 나의 망상이 재밌는 상상으로 좋은 글감으로 좋은 작품으로 연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했다. 쥐뿔 망상을 문장 한 줄로도 만들어 낸 적은 없지만 말이다. 


현대화된 사회에서 나의 뇌는 초원에 던져진 토끼처럼 작동한다. 항상 불행 엔딩을 달고 순간순간을 살아가다 보니까 몸에는 긴장이 바짝 들어 있다. 위장은 항상 긴장 상태에 절여져 있어서 과민해 있고, 머리는 두통, 근육은 긴장성 수축이 쉽게 온다. 숨쉬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쉽게 고갈된다. 할 일을 할 때가 되면 정말 남은 에너지를 긁어모아, 쥐어짜서, 말 그대로 정신력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정신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다들 이렇게 없는 무언가도 긁어모아서 해내고 있다니 삶을 살아가는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읽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은 스웨덴 출신의 스님이 본인의 삶을 쓰신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스님이 머물던 절의 큰 스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정신은 나무를 베는 칼과 비슷하다. 아무 데나 사용하면 무뎌져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나무를 베는 칼은 나무를 베는 데만 쓰면 된다. 나머지 시간엔 칼집에 꽂아 두고 쉬게 하면 된다.’ 


나는 칼을 아무데나 휘두르고 있었다. 종이, 플라스틱, 음식 뭐든 일단 베어놓고 뭉뚝해진 칼을 들고 나무가 안 잘린다고 푸념하고 있었다. 없는 에너지를 어떻게 더 긁어모을지만 생각했지 애초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고갈시키지 않을 생각은 하지를 못했다. 애초에 필요한 곳에만 휘두르면 될 것을. 좋지 않은 망상, 불안한 생각들, 일어나지도 않을, 아니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일어난다고 해도 내가 지금 상상해서 어떻게 대비 할 수도 없는 어떤 일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느라 내가 그리고 있는 밝은 미래, 정말로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내 미래를 생각하고 그려나가는 데는 아주 조금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생각은 생각을 먹이로 먹고 자란다. 어떤 생각에 집중을 하면 그 생각이 쑥쑥 커진다. 걱정을 많이 하면 걱정이 커진다.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생각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먹이를 주면서 계속 방치를 해 온건 아닐까. 몇십 년 동안 베어 온 정신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저런 생각이 든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마다 아차 칼집에 넣어야지. 하면서 정신을 다른 데로 돌려 봐야겠다. 정신과 에너지를 무엇보다 더 집중해서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나머지 시간엔 잘 넣어 두었다가 필요한 데만 꺼낼 수 있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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