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일본(교토)으로 건너와 지내고 있다. 평화로운 분위기, 친절한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 가끔씩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과 영상 통화를 하는데 그때마다 '거기 가더니 표정이 정말 많이 밝아졌다, 얼굴이 피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 요즘 거울이나 사진 속 내 모습을 보면 그렇게 밝고 행복한 표정일 수가 없다. 남에게 잘보이거나 사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억지로 내짓는 그런 표정이 아니라, 정말 마음 속 깊숙한 바닥부터 우러나오는 밝은 표정들. 사람들과 인사하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거나 혼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쉴 때는 물론, 학교와 구청에서 골치 아픈 서류 작업을 할 때조차 삶이 만족스럽고 마음이 편안하고 그렇다. 이렇게 밝고 평안한 나를 다시 본 게 얼마만인지, 이런 나를 되찾게 되어서 정말 좋고 감사하다.
한국에서도 이런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순간들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 어떤 짧막 짧막한 사건들 속에서는 그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테지만, 내가 기억하고 또 내 일기장이 기록하는 한 한국에서 나를 지배했던 정서와 표정은 대부분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열등감, 우울감, 초조함, 간혹 나보다 소위 ‘사회적 계층’이 낮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이나 멸시, 혐오, 그리고 나도 자칫 나락으로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분명히, 한국에서 나는 늘 그런 감정들에 빠져있었고 마음 평온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내게 자살할 용기까지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시한부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면 망한 캐릭터를 삭제하듯 홀가분히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담담함은 있었지도 모르겠다. 다행인지 그런 상황은 오지 않았고 지금은 한국 밖에서 잘 살아남고 있다. 감사하다.
아직 완전히 괜찮은 것은 아니다. 가끔 해가 질 때면 ‘이곳에서의 시간이 또 하루 줄었네’ 하면서 돌아갈 수도 있단 생각에, 청승이 아니라 진지하게, 잊었던 불안감이 떠오르고 우울감에 빠지곤 한다.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는 ‘사람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다’며 행복을 찾아 한국을 떠나는데, 현실 속 난 한국 밖에 나와서도 혹시 돌아갈지도 모를 미래를 두려워하는 한심한 모습이다.
왜 그토록 한국에서의 삶이 무섭고 싫은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언젠가부터 한국이 거대한 사회진화주의(Social Darwinism)의 실험장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소설 속 주인공 대사처럼 나도 내가 "경쟁력 없는 인간" "멸종돼야 할 동물"이 된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한 특정 사건이나 인물, 또는 특정 시기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하기엔 그동안 내 인생이 그리 탁월한 것도 아니지만 또 큰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여느 한국인들처럼 학창 시절부터 군시절을 지나 사회에 나와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그다지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고 힘들기만 했고 그 시간들 속에서 한국에 대해 싫고 두려운 느낌이 굳어져 온 것 같다.
내가 문제인가? 한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약하거나 노력이 부족해서 혹은 바라는 게 너무 많아서 그래서 힘든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한국에서의 삶에 만족하며 잘 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 빼곤 다들 괜찮은 걸 보니 아마도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게 꼭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느낀다. 내가 아니라 ‘사회’가 뭔가 잘못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예를 들어서, 지금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평균에서 두 배 수준으로 2위와도 격차가 큰 압도적 1위다. 그 중에서도 청년 자살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최근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참고로 지금 한국 청년의 월급 평균은 252만원(세전)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합계출산율이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이는 알다시피 세계 최저 수준이다. 난 정말 ‘해일 오는데 조개 줍고 있다'는 식의 헛소리를 싫어하지만, 위 지표들에 대면 한국의 여성 유리천장 지수가 OECD 국가들 중 12년째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쯤은 정말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끔찍한 현실이다.
이런 저런 지표들을 보고 있으면, 난 한국에서의 삶이 싫지도 무섭지도 않고 그저 '살기 좋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자살은 많고 출생은 적은 걸까. 뭐가 잘못된 걸까.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지만, 요즘 읽고 있는 지바 마사야 책의 표현을 빌리면, 어쩌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낡은 "이항대립"적 사고에 빠져 있는 게 문제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걸 이분법으로 나누고 한쪽에만 좋은 가치를 두면서 거기서 멀리 떨어진 나머지들은 다 거짓, 가짜로 깔아뭉개는 그런 폭력적인, 현대성을 갖는 데 실패한 사고방식이 한국 사회에 너무 만연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정말로, 한국에는 별것도 아닌 기준으로 사람들을 줄세우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잔인하게 차별하고 쥐어짜는 행태들이 너무도 많다. 사람들을 다 똑같은 방향으로 뛰게 만들고 순서를 매기면서 "이등 시민" 만드는 작태가 횡횡한다. ‘이것’(+) 아닌 ‘저것들’(-)은 전부 가치 없는 실패, 모조품으로 취급하고, 경계선의 것들과 동질하지 않은 차이는 지워버리고 무시한다. 그리고 또 대다수 사람들은 ‘생각’ 없이 그런 바보같은 셋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채 열심히 주어진 걸 수행(performative acts)하며 살아간다.
난 지금 한국 사회의 이런 모습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히는 진짜 문제가 아닐까하고 생각하고 있다.
가만 보면, 한국에서의 삶은 언제나 경주의 연속이다. 이때 경주는 절대로 경쟁(competere)이 아니다. 한국의 경주는 개개인의 다양성과 주체적인 선택을 기초로 한 경쟁이 아니라, 언제나 전체의 획일성과 맹목성을 기초로 한, 뭔가 경쟁과는 다른 류의 게임이다. 실체도 없는 어떤 모범, 이상을 향해 다같이 한 방향으로 뛰는 그 게임 속에서, 다들 이유도 모른채 마치 자기 자신을 캐릭터 레벨을 올리듯 채찍질하고 뒤쳐지면 비하하며 살아간다. 나는 그게 너무 싫다. 잘 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결국은 이렇게 나가 떨어져서 한국을 싫어하고 무서워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을 떠나는 청년들의 고민이 잘 담긴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정말 기뻤다. 고아성 배우를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며, 나같은 사람들이 왜 계속 한국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 좀 해줬으면 해서다. 소설 속 대사처럼,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은 그들이 ‘다 늙어서 외국병에 걸려’ 그런 것이 아니고 ‘외국 나가면 고생이란 걸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며, 자신의 삶을 진지하지 않게 생각해서는 더욱 아니다. 소설 속 계나가 말하듯, 다들 “진짜 행복”해지기로 결심하고 이를 위해서 몸부림치는 중일 뿐이다. 부디 많은 한국인들이 영화를 많이 보고 한국에 수 많은 계나들의 고민을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