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안톤 Nov 01. 2020

늦은 오후 버스 안에서

+ 긍정일기 매거진에서 이동한 글입니다.



방 한쪽 작은 창에 둥근달이 떠있습니다.

불을 끄자 잠시 캄캄했던 방은 달빛을 받으며 하나둘 윤곽을 드러냅니다.


날이 제법 겨울다워졌네요.

가볍게 틀어놓은 보일러 온기에 창문에는 어느새 촉촉한 김이 서렸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죠.

창문에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도장을 꾹 찍었습니다. 엄지손가락 끝으로 콕콕 다섯 번을 찍어주니 아기 발바닥이 완성되었습니다.


오늘은 쉽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하기를 수차례, 결국 쿠션 하나를 가슴에 받친 채 배를 깔고 엎드려버렸습니다. 창문 밖 도로 위 차들을 보며 ‘차멍’을 해봅니다.


모처럼 쉬는 토요일 오후, 치과에 다녀왔습니다.

치과까지는 버스로 30분 남짓, 좋아하는 시내버스를 오랜만에 탔습니다. 카드를 찍고 버스에 오르니 오른쪽 줄에는 자리가 많이 비었네요.

중앙에 서있는 기둥을 잡고 날렵하게 몸을 돌려 착석해봅니다.

아! 해가 버스의 오른쪽에 떠 있었네요. 뜨겁습니다. 이래서 아무도 앉지 않았나 봅니다. 해가 구름에 가려지거나 버스가 방향을 바꿔주길 기다립니다.

하지만 날은 화창하고 버스는 계속 직진 중입니다.


조용한 버스 안 라디오에서 이문세의 옛사랑이 흘러나옵니다.

노래가 흘러나오자 버스 안 승객 모두 저마다의 감성에 빠지는듯합니다.

저 역시 창문 밖 익숙한 풍경을 보며 잠시 노래에 취해봅니다.


늘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을 통해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살았습니다.

유튜브 영상,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제목의 인터넷 뉴스, 관심 있는 작가의 글...

세상을 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오랜만에 탄 버스의 창문을 통해 다정한 커플,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꼬마, 붕어빵을 파는 노점 상인을 보았습니다.

잠시 손에서 휴대폰을 내려놓으니 잊고 살았던 일상이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가끔은 버스를 타고 보이는 것을 보는 일도 즐거운 것 같습니다.

진짜 세상은 여기 있었네요.


“삐용삐용”

늦은 오후 버스에서 보았던 풍경을 되새겨보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립니다.

오늘도 그럭저럭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오늘 밤 꿈에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버스를 타고 온 세상을 구경했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샴푸 받으러 미용실 가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