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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톤 Nov 15. 2020

샴푸 받으러 미용실 가는 사람

+ 긍정일기 매거진에서 이동한 글입니다.




며칠 쌀쌀했던 날씨가 오늘은 제법 포근합니다.
가볍게 세안을 하고 거울을 보니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라 있습니다.
미용실에 갈 때가 되었나 봅니다.

날씨가 좋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갈까 고민합니다.
땀범벅된 머리를 만지게 하려니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낯익은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3층을 누르고 문을 닫으려는데 배달 기사님이 뛰어옵니다.
열림 버튼을 누르고 문을 잡아드렸습니다. 기사님은 5층 당구장에 가시는 모양입니다.
짜장면 냄새가 엘리베이터에 진동합니다.
아무리 배불러도 냄새만 맡으면 쳐다보게 되는 음식이 몇 가지 있습니다.
오징어 버터구이, 짜장면, 치킨이 그렇습니다.

3층에 내렸습니다. 안쪽이 훤하게 보이는 미용실 유리창 너머 원장님이 반갑게 손을 흔듭니다.
미용실 안으로 들어갑니다. 염색하던 스텝 한 분이 인사를 합니다. 카운터에 있던 선생님 한 분도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남자 스텝 한 분이 다가와 외투를 받아줍니다. 캐비닛에 외투를 넣은 뒤, 가운을 입혀주고 주머니에 캐비닛 열쇠를 넣어줍니다.


커트하기 전, 샴푸실로 이동합니다.
늘 머리를 감겨주시던 스텝이 아니네요.
아주 앳된 얼굴의 남자 스텝이고, 신입인 듯합니다.

커트보다 샴푸 받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살짝 긴장이 됩니다. 몇 번의 실망과 환희를 맛보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샴푸실 의자에 앉아 천천히 누웠습니다. 얼굴에 물이 튀지 않도록 페이스 커버를 덮고 손가락에 물을 묻혀 이마를 ‘톡’하고 찍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얼굴에 잘 고정됩니다. 별것 아닌 듯 하지만 세심한 배려가 느껴집니다.
미온수에 머리를 충분히 적십니다. 샤워기 헤드를 머리에 가까이 대고 손바닥으로 두피를 가볍게 두드립니다.

‘찰박찰박’ 소리가 났습니다. 두피까지 골고루 물이 적셔진 듯합니다.
드디어 샴푸를 펌프질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기분 좋은 설렘에 침을 한번 꼴깍 삼켰습니다.
부드럽게 문지르며 거품을 내고 헤어라인과 정수리를 마사지하듯 문지릅니다. 적당히 손가락에 압력을 가하며 문지르니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뻐근했던 머리가 가벼워지며, 눈이 맑아집니다.
잠시 기분 좋은 느낌에 취해 있을 때쯤,

“아프지 않으세요?”

스텝이 물어봅니다. 아프긴요. 더 쥐어짜 주세요.

“아니요, 시원하고 좋아요”

한참을 샴푸로 마사지하더니 샤워기를 틀고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거품을 헹굽니다.
벌써 끝난 건가 하는 마음에 살짝 아쉽지만 괜찮습니다.
오늘은 커트와 두피 클리닉을 같이 받을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거품을 다 헹군 후, 수건으로 가볍게 머리를 말려줍니다.
누워있던 나를 의자에 바로 앉게 한 뒤, 수건으로 가볍게 털다가 목덜미를 마사지합니다.
아, 새로 온 스텝은 정말 세심한 분이네요.


원장님 자리로 이동합니다.

“별일 없이 잘 지냈어요? 머리 많이 자랐네?”
“네, 잘 지냈어요. 원장님도 별일 없으셨죠?”
“아까 샴푸 해준 친구 어때요?”
“잘생겼지만 연하는 관심 없어요”
“응? 아. 하하하 샴푸 시원하게 했냐고요”
“아.. 엄청 꼼꼼하고 시원하게 잘해주셨어요. 저 잠들뻔했어요”
“다행이네요! 가르친 보람이 있네요”

커트를 하고 두피 클리닉을 받았습니다.
두피 진정효과가 있는 제품을 도포 후 머리에 모자처럼 생긴 것을 씌웁니다.
뒤통수 부분에 호스를 연결하면 모자가 부풀며 전체적으로 머리가 따뜻해집니다.
기분은 좋지만, 거울을 보니 에일리언 머리와 비슷합니다.

15분 정도 스팀이 끝나고  다시 샴푸를 받았습니다.
두피에 도포한 약품을 제거해야 해서 그런지 처음보다 더 꼼꼼하게 오래 헹궈주셨네요.
따로 팁이라도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기분 좋은 바람에 머리를 말리고 계산을 한 뒤, 미용실을 나왔습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미세먼지가 많다고 했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머리도 가볍고, 발걸음도 가벼우니 조금 걷고 싶어 졌습니다. 길가에 늘어선 상점과 사람들을 구경하며 아주 천천히 걸었습니다.

미용실에서 받은 서비스도, 한가롭게 걷고 있는 이 시간도 오랜만에 맛보는 여유였습니다.

두피 클리닉이라는 작은 사치도 부렸네요.

골치 아팠던 회사일도 잠시 잊었습니다.

이런 게 나를 위한 선물이겠죠.

머리가 맑아졌으니 오늘 밤은 더욱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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