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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톤 Apr 25. 2021

보고서만 쓰는 내가 따뜻한 글을 쓸 리가 없잖아

그렇다고 보고서를 잘 쓴다는 뜻은 아닙니다

매주 수요일 주간보고서를 작성한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월간보고서도 작성한다.

시스템 점검이라도 있는 날엔 점검결과 보고서를 쓰고, 회의가 끝나면 회의록도 쓴다.

업무에 필요한 내용은 하루에도 수십 번 사내 메일을 통해 보고하고 보고받는다.

보고서와 함께 하는 삶이 돼버렸다.


퇴사율을 낮추기 위한 대책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연봉 많이 주면 아무도 안 나갈 것 같은데요.


이렇게 적고 싶은걸 꾹 참았다. 퇴직금 통장의 잔액을 보며 흥분한 마음을 가라 앉힌다.

보고서는 딱딱한 글이다. 주관적인 의견이나 감정이 들어가면 안 된다.


볕 좋은 오후, 커피 한잔을 마시며 브런치 피드에 올라온 글을 읽고 있었다.


“까까오 또오오옥!”


다소 경박스러운 알림음으로 변경했더니 까마귀 울음소리 같은 카톡음이 울렸다.

 

‘카톡에 네가 쓴 글 알림 와서 봤는데 너도 좀 요새 유행하는 책처럼 써봐. 그... 뭐냐 언어의 온도? 그런 것처럼 마음 뜨뜻해지는 거’


‘이제 곧 여름인데 따뜻한 글은 써서 뭐하려고...’


‘그런 글 사람들한테 인기 많잖아. 서점 가면 에세이 베스트에 다 그런 것 밖에 없더라. 너는 보고서처럼 너무 딱딱해서 여자들이 안 볼 것 같아’


‘보고서’라는 말에 움찔했다.

신기(神氣)가 생겼나... 요새 보고서 늪에 빠져있는 건 어찌 알고.

친구의 잔소리는 계속되었다.


‘내가 브런치를 보다 보니 육아, 퇴사, 결혼 그런 게 인기 있더라. 여성 구독자가 많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위로, 공감 에세이도 인기 많은데 축구 얘기만 쓰니까...’


‘나는 미혼이고 애도 없고 퇴사할 생각은 전혀 없는데, 그런 걸 어떻게 쓰냐? 그리고 여자도 축구 좋아하는 사람 많아’


‘그렇게 고집부리면 구독자 하나둘 빠져나간다’


친구에게 강신(降神)이 오신 게 틀림없다.

오늘 구독자 1명이 살짝 빠져나간 것을 보고 내가 활동이 뜸해져서 그런가 보다, 열심히 해야지 하고 애써 무시했는데 기가 막히게 후벼 판다.


일주일 동안 브런치의 인기글을  섭렵했다는 친구는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유부녀로, 육아로 인해 지치고 힘들  브런치의 ‘따뜻한글이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분명 나에게는 애들 재우고 남편과 마시는 맥주가 최고의 위로라고 했는데...




소위 따뜻한 글, 위로를 주는 글의 특징은 ‘공감’에 있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더 힘내라고 말하는 것보다 힘든 부분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것이 훨씬 위로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맞아, 나도 이랬어
어쩜, 하나 같이 내 얘기 같네


공감을 통한 ‘유대감’이 형성될 때 우리는 그 글을 통해 위로를 받고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축구에 빗대어 풀어가는 내 이야기는 라디오 ‘여성시대’의 사연이나 ‘좋은 생각’의 수필처럼 누구나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마도 축구 때문이고, 회사라는 제한된 공간과, 관리자라는 내 위치에서 오는 입장차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저  글을 음.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혹은 이런 생각하며 사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구독과 라이킷까지 해주.... 아.. 아닙니다)


잠시 글쓰기를 쉬는 동안 마음이 편해졌고(숙제 같은 글쓰기), 조급함이 사라졌으며(구독자와 포탈 메인), 여유가 생겼다.(아싸 프로젝트 끝!)

영화에도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있는가 하면, 쫄딱 망한 영화도 있고, 독립 영화도 있는 것처럼 나는 이제 막 작은 카메라 하나 들고 찍기 시작했으니 부담도 걱정도 없다.


아직 마음은 누구보다 몽글몽글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넘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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