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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톤 May 30. 2021

우리동네 책방

독립서점 방문기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사이트에 물건을 하나 내놓았는데, 1분도 안돼서 구매자가 나타났다.

애초에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놓기는 했지만, 불필요한 실랑이도 없고, 약속시간도 정확하게 지켜 판매자인 내가 오히려 사례를 하고 싶었다. 좋은 거래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고 친구와 점심을 먹기 위해 브런치 카페로 갔다.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잘 익은 아보카도와 새우가 올라간 샌드위치, 파스타를 시켰다.

아무리 두꺼운 옷도 한 시간이면 마를 것 같은 초여름 오후다. 맛있는 점심에 배도 부르고 집으로 그냥 들어가기는 아쉬워 소화도 시킬 겸 집 근처 독립서점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보다 먼저 주택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가 눈에 들어온다.

‘저 옷에선 오늘 햇볕 냄새가 나겠구나’

초여름 바람에 빨래가 앞뒤로 살랑살랑 춤을 춘다. 덩달아 내 마음도 살랑살랑, 뽀송뽀송 난리가 났다.

날이 좋아서 인지 맛있는 음식 때문인지 몰라도 기분이 좋아졌다. 배 부르고 등 따스운 게 최고라더니, 지금이 딱 그랬다.

도착한 서점은 대부분 독립서점들이 그러하듯, 작고 아담했다.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서자 책방 특유의 종이 냄새가 가득 밀려왔다. 대형서점과 달리 작은 공간에 응축된 책 냄새는 더 진하다. 가슴이 벅차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 책 냄새 좋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마음이 튀어나왔다. 내가 이 냄새를 얼마나 좋아하냐면, 책을 집으면 중간을 펼쳐 냄새를 먼저 맡고, 책방에 가면 책방 냄새부터 한 호흡 들이킨다. 집에 방향제까지 교보문고에서 쓰는 것과 같은 향을 쓸 정도다. 이 쯤되면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건지 책 냄새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독립서점은 신기한 책이 많다. 제목을 아는 책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장르도, 작가도, 제목도 생소하다. 책 편식이 심했을 때, 독립서점은 마치 풀떼기 반찬처럼 느껴졌다.(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무언가 심심한 느낌이고, 낯설었기 때문이다.

브런치 활동을 시작하면서 글 쓰는 것과 책 출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을 무렵, 독립서점에 있는 책들은 더 이상 풀떼기 반찬이 아니었다. 유기농 채소로 가득한 가정식 백반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작가도 있고, 이런 책도 있다는것을 독립서점을 다니며 알게 되었다. 그만큼 독립서점의 책은 다채롭고 신기하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을 만한 가벼운 책을 찾다가 조헌주 작가의 ‘어쩌다, 해방촌’이라는 책에 눈길이 갔다. 일단 책이 솜털처럼 가벼웠다.

화성에 탐사선을 발사하고 말만 하면 불도 꺼주고 창문도 열어주는 시대에 ‘해방촌’이라니 이질감과 함께 묘한 호기심이 생겼다. 책을 구매하겠다고 말씀드리자 서점 사장님은 뭔가를 주섬주섬 챙겨주신다. 드립백 커피와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책갈피, 그리고 엽서를 주셨다.

아휴…뭘 이런걸 다….ㅎㅎㅎㅎ


독립서점을 들리면 꼭 책을 한 권씩 구매한다.

사고 싶은 책이 없어도 의무적으로 한 권은 꼭 사서 나왔다. 편하게 구경만 하고 가라고 했음에도 나는 책을 샀다. 관람료 비슷한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끄럽지만 나는 독립서점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독립영화, 독립서점, 인디밴드와 같은 단어는 분명 그 의미가 아님에도 나에게 그저 ‘저예산‘에 대한 부분만 강하게 인식되었다.

그것은 코로나 시대와 맞물려 소상공인의 어려움으로 인한 안타까움마저 느끼게 했다. 고작 어쩌다 책 한 권사는 주제에 참 쓸데없는 오지랖이고 무지가 아닐 수 없다. 그저 주인의 취향 껏 꾸며놓은 작은 서점일 뿐인데 말이다. 이윤의 추구보다는 창작자의 의도에 집중하고 평소 대형 유통 서점만 접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책을 알리는 좋은 곳인데도 그동안 나는 그 의미를 곡해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좋았던 하루였다. 좋은 날씨와 기분 좋은 중고 거래, 맛있는 브런치, 옥상에 빨래까지.

그중 단연코 좋았던 것은 독립서점에 대한 편견을 인식하게 된 점이라 하겠다.


독립서점에서 계속 책을 살 생각이다. 편견을 버리고 순수하게 책을 즐기며 숨어있는 좋은 책을 발견했을 때 그 설렘과 기쁨만을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이런 좋은 책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만 하며 서점을 나서면 된다.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내손에 들린 책만큼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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