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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style Feb 02. 2024

밀어내니 밀려왔다!

회사문화 답사기 1

밀어내기 매출을 일으킨 다음 날.


대리점 사장님을 만났다.

합의되지 않은 매출을 발생시킨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대리점을 개설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고 영업력도 부족한 대리점이었기에 차후 몇 개월은 매입을 줄이고 실매출에만 주력하자고 부담감을 덜어드렸다. 전단제작비 지원과 판촉물 지원 등으로 대리점의 실판매 증진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후로 두 달간 매출을 일으키지 않았다.


대리점 사장님이 저녁에 보자고 연락이 왔다.


조그만 호프집에서 만난 사장님은 판매가 안되고 자금회전도 어려워  대리점을 접어야겠다고 했다.  나는 술을 못 마셔서 음료수를 마시고 사장님은 맥주 두 병에 마른안주 한 접시 놓고 어두운 얼굴로 의기소침한 채로 연거푸 맥주를 들이켰다. 두 달 전에 받았던 제품은 실판매가 어려워 전자상가에 헐값으로 덤핑처리를 하셨다고 했다.


마음이 참 괴로웠다.


괜한 오기로 두 달 전 팀 매출을 메꾸었던 치기가 후회스러웠고 손실을 보고 사업을 접겠다는 대리점 사장님께 더욱 미안했다. 유통영업에서 밀어내기 오더는 죄악인데 당시는 모르는 척 넘어가는 잘못된 관행이 많았던 시절이었고,  나 또한 알고도 밀어내기를 했던 것이었기에 깊은 유감을 표시하는 것 외에는 더 드릴 위로가 없었다.


석 달 뒤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영업 1팀을 떠났다. 그리고 육 개월 뒤 느닷없이 그룹 감사팀에서 조사를 나왔다. 당시 밀어내기 했던 대리점이 사업을 접는 과정에서 밀어내기 한 제품 외에 회사에 변제해야 할 외상미수금들이 지연되었고 이로 인해 담보매각을 통해 추가손실을 입었던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대리점 사장님은 그룹 감사실에  외상매출금 지연이자에 대한 탕감을 호소하면서 내가 밀어내기 영업을 했던 것을 알게 되어 조사를 나온 것이었다.


당시 그룹 감사실은 전 직원이 찜찜해하던 부서였다. 감사 대상으로 지목받으면 본인의 과오가 없더라도 괜스런 불이익을 받을 것 같은 분위기와 직원들 사이에 오해와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곤 했기에 내가 조사 대상이 된 것은 충격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감사에 임했다.


지사 내 소회의실에서 문을 닫고 감사를 나온 과장님과 마주 보고 앉았다. 과장님은 나에게 경위를 설명하라 하셨다.

두 시간 정도 감사실 과장님께 당시 영업매출 마감상황과 밀어내기 매출을 일으킨 후 대리점 사장님을 만나서 사과했던 내용들에 대해 상세하게 진술하고 자술서도 작성했다.


감사가 끝나고 일주일 뒤에 감사실에서는 당시 유통영업의 잘못된 밀어내기 관행으로 인한 업무적인 판단으로 결론 내리고 내게 경위서를 작성하는 경고처리로 마무리하였다.


신변에 불이익이 없어서 다행스러웠으나

미음 속 깊은 곳에서는 수치심이 몰려왔다.


이후 회사는 '유통 선진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첫 번째 버려야 할 구습으로 '밀어내기 근절'을 선언하였다. 일일 실 판매지수보고가 주요 업무가 되었고, 제품판매 장려금정책도 볼륨인센티브를 줄이고 실판매제품별 인센티브와 대리점 직원 교육과 해외연수 프로그램들을 내걸면서 유통영업의 체질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대리점은 메이커를 대신하여 시장의 최전방에서 기업과 고객을 상대로 상품의 가치와 효용을 전달하는 메신저이자 주인공인데, 담보와 인센티브를 볼모로 매출을 밀어내는 전근대적인 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유통영업에서 메이커는 브랜딩과 프로모션을 실효적으로 강력하게 전개하고, 유통영업사원은 해당 지역 내 시장조사와 고객니즈를 발굴하여 대리점의 실판매를 촉진하는 프로모터이자 세일즈맨으로 본분을 다해야 함을 마음에 새기고 발로 뛰어야 한다.


기업의 최종고객은 기업고객이나 개인고객이다.

대리점은 메이커의 첫 번째 고객이며 유통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빗물이 모여서 강물이 되고,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는 것. 그래서 메이커에게 대리점은 유통의 첫 관문이자 대고객인 거다. 90년대의 유통에서 '밀어내기'는 관행이자 만연한 구습이고 악태였다.


모름지기 메이커는 대리점과 상생하여야 하며, 대리점 대상으로 고객만족 중심의 영업과 지원을 다하여야 한다.


95년 이후 삼성그룹은 '고객만족 신경영'을 선언하고 엘지그룹은 '정도영업'을 강조하면서 업계에 만연하였던 '밀어내기 영업'이 서서히 사라지게 된 점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고객이 원하는 만큼, 고객이 감당할 만큼'만 수요예측과 판매촉진 마케팅을 통해 시장의 구매력을 촉진시키고 대리점에 매출을 독려하는 건강한 유통영업이 성장하길 바란다.


세일즈는 영원하다!

유통은 건강한 순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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