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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style Feb 13. 2024

휴가 갔다 오니 책상을 빼버렸다!

회사문화 답사기 13

회사에서 책상은 앉는 이의 지위를 대변한다. 90년대 회사의 책상은 모두 'ㄷ자' 배열로 부서단위의 장의 책상을 기준으로 부서원의 책상을 서로 마주 보게 구성하였다.


부서장의 책상은 부서원 책상 크기의 1.5배는 되었고 서랍장도 두 개, 보조테이블도 붙여놓아 보기에도 '높은 자리' 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는 조직장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책상배열이 중요했고,  승진에 대한  표식으로  '센터에 위치한 더 큰 책상'을 빼놓을 수 없었다.


95년 초, 삼성전자 정보통신사업부문과 컴퓨터사업부문의 부문 간 합병이 이루어졌다. 지점의 규모가 커지고 떨어져 있던 부문별 직원들이 하나의 사무실에 모였다.


나는 정보통신사업부 소속 대리로 팩시밀리 세일즈를 하고 있었고, 컴퓨터사업부문 과장님과 직원 두 명이 함께 근무를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난 후 컴퓨터 사업부문 과장님이 사표를 내고 공석이 되었다. 직판영업을 담당하던 직원 중에서는 그만두신 과장님 다음 서열이 대리였던 나였기에 지점장(이사)님은 나를 ' 팀장대리'로 지정하고 팀장의 역할을 맡겼다.


드디어 큰 책상에 앉았다.


등 뒤에는 커다란 통창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자리에 앉으면 좌우측으로 네 명의 팀원들이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저 앉아 있을 뿐인데 팀원들을 관리하는 기분이 들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가 보다 했다.

과장진급도 하기 전인데 팀장에 보임되어 책임감과 함께 기쁨도 컸다. 더욱 열심히 공공기관과 기업을 상대로 직판영업에 매진하였다.


여름휴가 시즌이 되었다. 미루어 두었던 휴가를 팀에서 마지막 순서로 휴가를 갔다.


휴가에서 복귀한 월요일.


내 책상이 없어졌다!


휴가를 가기 전에 새로운 지점장(이사)님이 오신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는데, 팀원 중 고참인 박대리가 내 눈치를 살피면서 상황을 알려주었다.


새로운 지점장님이 오시고 지점을 살피던 중에 "대리가 과장책상에 앉을 수 없다"라고 화를 내시고 자리를 빼라고 하셨다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화도 났다!


자존심을 털린 기분이었고, 오직 지점의 매출달성과 회사에 충성심을 가지고 일한 결과 전임 지점장님께 인정을 받은 '팀장 책상'이었기에 상심이 더해졌다.


새로 오신 지점장님께 인사를 드렸다.


"과장되면 팀장 책상에 앉아라!"


딱 한 마디 하셨다.


"네! 잘 알겠습니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었다.


근엄하고 딱딱해 보이는 인상의 지점장님은 가전영업부문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하시는 분이셨고, 가전영업 부서는 전통적으로 '연공서열'과 '위계질서'를 강조하고 드러내는 성향이 강한 부문이었기에 책상 빼버린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소문에는 연말이면 본사로 올라가신다는 썰이 있어서 꾹 참고 나는 내 임무에 충실하기로 다짐하고 영업에 매진했다. 다행히도 회사의 그린마케팅 전략과 고객중심의 신경영선언으로  컴퓨터 직판매출 고객은 점점 증가하였고, 기존 팀원들은 기업에 나는 공공영업에 치중하면서 팀의 매출을 초과달성할 수 있었다.


특가매출을 위해 품의서를 작성하고 지점장님께 결재를 받으러 대면보고하면, 짧게 질문하셨다.


"이 건 판매하면 마켓셰어는 어떻게 되나?"


직판영업에서 수익률을 판단하기 전에 시장점유율을 먼저 파악한 후 절대 수익률 기준으로 특가배출을 승인하시는 것이었다. 직판영업에서 시장점유율의 극대화 이후 재판매나 교체판매를 통해 수익의 개선을 도모해 나가는 것이 전략임을 알게 해 주셨던 것이었다.


대신 유통영업팀에게는 수익률과 여신한도 관리를 중점으로 관리하셨기에 유통을 맡은 팀장님은 매일 몇 번씩 지점장님께 불려 가 취조 수준의 질책을 당하시곤 했다.


연말이 가까워진 초겨울 어느 날.


지점장님께서 아직 대리인 나에게 다시 팀장책상에 앉으라고 지시하셨다. 기분이 좋았다. 인정받은 기쁨이 매우 컸다. 휴가 때 내 책상을 빼신 이후 육 개월 정도 나를 지켜보신 후 '너를 인정한다'는 메시지로 느껴졌기에 참 기뻤다.


조직에서 생활하는 누구나 다 그렇다.

리더에게 인정을 받을 때가 가장 기쁘다.


반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는 감정 먼저 상하고 이성적 판단이 흐려져 슈트 안 주머니에 사표 한 장 넣고 다니게 된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슈가 발생하고 나에게 직간접적으로 부정적 영향이나 피해의식을 가지게 하는 일들도 닥친다. 회사는 고유의 문화가 있고, 조직장은 그들이 가진 돋보기로 조직원을 들여다보는 문화가 있다.


책상을 뺏기고 다시 찾은 사건을 통해서 배웠다.

회사에서 어떤 일이 나에게 닥치면 제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왜? 이런 일이 나에게?'가 아니라

'이 일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연말 지점장님 송년회에서 지점장님은 사모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가곡을 부르셨다. 회사에서 보아오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분이셨다.


지점장님의 본사 영전을 진심으로 축하드렸다.


겉으로 참 딱딱하고 서슬 퍼런 분이셨으나, 속마음은 참 부드럽고 심지어 약하신 분이기에 업무 그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엄격한 페르소나를 쓰셨던 거였다.


가까이하기에 어려운 리더가 여러분 곁에 있는가? 그분은 어쩌면 외로움을 많이 가지고 계시거나 내면이 약한 분일 수 있다. 그분이 화를 내거나 설령 나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더라도 '현상'에 함몰되지 말 일이다. 그분은 댁에서 하루에 벌인 일들에 대하여 복기를 하면서 딱딱한 페르소나를 쓰신 것에 대해 성찰의 시간을 가지실 것이므로.


엄격한 리더 분의 마음속에 오히려 약한 아킬레스근이 있음을 헤아리고 그분의 '호통 속에 담긴 애정'을 즐겨 찾으라. 그것이 슬기로운 회사생활이 될 수 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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