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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style Feb 28. 2024

김남일이 울렸다!

회사문화 답사기 14

2002년 월드컵은 대한민국 전 국민의 머리에 뿔을 달아 렸고, 백의민족의 전통을 던져 버리고 온통 빨간색 티셔츠를 입혀 버렸다.

16강전, 8강전, 4강전 출전을 달성한 대표팀 선수들은 한순간에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홍명보, 안정환, 박지성, 김남일~~~


진공청소기라는 닉네임을 달게 된 김남일선수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수비수였고 2002 월드컵이 탄생시킨 셀럽 스포츠 스타였다.


삼보컴퓨터 마콤팀(마케팅커뮤니케이션) 팀장이던 나는 창업 20년이 지나도록 바꾸지 않던 회사 로고를 바꾸고 대대적인 기업 브랜드 이미지 개선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었다.


당시 삼보컴퓨터는 국내 최초 컴퓨터 제조회사로 전문기업, 첨단기업의 영역에 있었으나 눈에 보이는 로고나 간판 등은 현대적 감각은 없었다.

브랜드 TOM조사와 FGI 서베이를 해보면 삼성전자에 밀리고 있었고,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나 심지어 '금은방' 이미지를 떠올리는 키워드들이 튀어나와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삼보컴퓨터 로고는 빨간색 다이아몬드의 형상을 심벌로 사용하고 있었고, 유사 로고가 동네 금은방마다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기 때문에 서베이 결과에 이의제기를 할 수도 없었다.


6개월간의 CI개선 프로젝트 끝에 드디어 창업자 회장님 앞에서 프로젝트 결과 보고 PT를 했다.

당연히 회사 로고를 모던하게 바꾸는 것이 회사의 브랜드 선호도를 올리는 솔루션이고 1318세대와 2030 세대의 눈높이를 맞추어 매출신장에도 도움이 되는 마케팅전략임을 설명드렸다.


하이라이트는 '빨간 다이아몬드 로고 버리기'였다. 창업 당시부터 사용해 오던 로고라 혹여 회장님의 애정으로 인하여 로고변경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어떻게 할지 염려하며 계속 보고 드렸다.

삼보(세 가지 보석 = TRI GEM)의 뜻을 계승한 TG 로고를 프로젝터 화면 꽉 차게 띄워 놓고, 소비자 설문조사에서 나온 삼보컴퓨터에 대한 올드한 이미지에서 젊고 신선한 청년의 이미지로 전환하기 위한 시각적 전략임을 강조하였다.


PT를 다 들으신 회장님께서는 청계천 상가에서 처음 삼보컴퓨터를 창업하시고 손수 도장집에 가서 장인과 마주 앉아 현재의 빨간 다이아몬드 로고를 5천 원 주고 만드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셨다.


"빨간 삼보 로고 마이 오래 됐재? 인자 세월이 변했으니 새 로고로 바꿔라!"


TG삼보컴퓨터의 탄생이었다.


2002년 겨울, TG Dream CF로 브랜드 이미지 변화를 예고하는 TV광고를 론칭하고 이후  단기간에 삼보컴퓨터의 젊은 감각을 어필하기 위해서 강력한 모델이 필요했다.


붉은 악마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았던 터라 광고대행사에서 '감남일 선수'를 추천했고 그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최대한 부각시켜서 신선한 CF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TG 카리스마 편'으로 명명한 CF 스토리는 김남일 선수를 메인모델로 상대역으로 당시 인터넷 5대 얼짱 중 한 명이었던 '구혜선 배우(당시 고교생)'를 조연으로 한 댄스파티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CF촬영을 위해 대형 실내촬영장에  모던한 무대를 설치하고 댄스 컷을 찍을 준비를 다 마쳐놓았다.


CF감독, 스탭진, 조연 및 보조출연진 등 수십 명이 메인 모델 김남일 선수와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안무디렉터가 김선수에게 댄스 신에 대해 설명하고 동작을 보여주던 그 순간.

갑자기 김선수가 잠시 쉬겠다고 하면서 댄스 신을 중단했다. 그리고 그는 CF촬영장을 떠나 버렸다.


그리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망했다!


이미 TV공중파 CF 일정도 다 잡아 둔 상태이고, 신문광고, 카탈로그를 바롯 한 각종 보이는 것들에 'TG카리스마'로 신선하고 젊고 약동적인 이미지를 김선수 CF로 신호탄을 일정에 맞추어 론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촬영포기를 해 버리면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광고대행사 국장께는 빨리 수습해 보라고 전하고 팀원들에게는 나를 찾지 말라고 하고 촬영장을 나왔다. 차를 몰아 한강 고수부지 주차장에 갔다.


오후 2시 정도였다.


속상함과 화남이 솟구치며 순간 눈물이 핑 돌고,


울었다!


'우째 이런 일이?'가 현실 업무에 닥쳐 버린 것이었고 사고 친 주인공은 아무렇지 않겠으나 사고당한 나와 우리 팀은 그로키 상태였다.


'본부장님을 어떻게 뵙고 설명드려야 하지?'

'대행사에서 김선수 마음을 잘 달래야 할 텐데'

'만약 이렇게 엎어지면 어떤 솔루션을 준비하지?'


울 때가 아니라 대안을 찾아야 할 때임을 자각하고 두 시간 정도 머무르다 한강고수 부지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3일 뒤에 CF촬영을 다시 하게 되었고,


댄스 신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는 김선수의 모습에 감사했다. 처음 CF촬영날 이탈해 버린 이유도 알게 되었다. 그는 보기와 달리 워낙 얌전한 성격이었고 춤추고 노는 것과는 담을 쌓고 운동만 했던 순수 운동파여서 댄스 신이 스스로 너무 힘들었던 것이었다.


두 번째 준비한 CF촬영은 무사히 끝났고 지상파 광고 일정에 맞추어 'TG 카리스마 댄스 편'을 론칭할 수 있었다. 덕분에 브랜드 TOM도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고, 2편으로 찍은 'TG 카리스마 SLIM' 편은 당시 가장 얇은 데스크톱 컴퓨터를 선보이면서 김선수의 단단하고 슬림한 몸매와 거대한 체구의 호주 원주민들을 대비시켜 주목을 끄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마콤팀장으로 2년을 일하면서 '매출마감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라고 외치던 세일즈팀장이었던 내가 막상 매출마감이 없으니 '광고시안 마감'이 있고 각종 디자인물과 콘텐츠 제작의 마감에 스트레스받아가면서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하든 '마감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세일즈 프로세스에서도 예기치 않은 사고가 터지고, 마케팅 프로세스에서도 매 한 가지로 원치 않는 사고는 종종 터진다. 사고는 당하면 힘들지만 울지 말고 솔루션 찾기에 눈과 귀를 더 크게 뜰 일이다.


2002년 겨울, 김남일은 나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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