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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ffyeon Sep 11. 2022

9월 9일

할머니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산다. 특히  때에는  크게. 문을 닫아도 티비 소리가 들려와서 잠을 자기가 힘들다. 2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명절에 할머니 집에 오면 내가 잘 방이 없어서 할머니와 거실에서 함께 잤는데 그때마다  숨도 자지 못했다. 티비 소리를 끄면 할머니는 다시 일어나 소리를 키운다. 몰래 일어나 소리를 조금 줄이면 할머니는 다시 일어나 줄인 만큼 키운다. 그러다 지쳐 잠에 들려고 하면 아침이 찾아왔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작년부터 나는 명절마다 창고에서 잠을 자고 있다. 문을 닫아도 아주 또렷하게 들려오는 티비소리에 잠을 자지 못해서 글을 쓰고 있다.  티비를 끄게 되면  집에 찾아오게 되는 적막을 상상했다. 할머니는 적막이 무서웠던  아닐까.  소음마저 사라지면  집은 너무나 넓겠구나,  빈틈 사이에 무언가를 가득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의 왼쪽 뺨에는 검버섯이 크게 자리 잡았다. 나는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싶었다. 유년시절 나에게 할머니는 가장 무서운 사람이었다. 할머니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나는  그녀의 칭찬이 고팠다. 내가   있는 거라곤 그녀가 주는 음식을 아주  먹는 . 오빠가 편식하는 음식을  먹으면 나를 오빠보다 더 예뻐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우걱우걱 모든 음식을 먹었다. 어떤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 이제야  선명하게 할머니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콜중독자였던 할아버지 곁에 있던 할머니. 그런 할아버지를 말리다가 허리가 다치셨던 할머니. 나는  사건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구급대원이 우리 집에 들어왔던 그날을. 오랜 시간 동안 병상에 누워 계시던 할아버지를 정성껏 보살폈던 할머니. 그리고 다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아주 곤히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그녀의 외로움에 대해서 나는 쓸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녀가 살아온 삶에 대해 나는 잘 모르니까. 나는 아직도 그녀가 나를 때리며 했던 말들이 더 선명하니까. 그것들이 불투명해질 때쯤에는 내가 당신을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족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서로를 더 보듬어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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