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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ffyeon Oct 22. 2022

10월 21일

오늘은 오랜만에 퇴원한 현곤이를 만났다. 근래에 두번이나 입원했던 현곤이는 못 본 사이에 살이 많이 빠져있었다. 잘생겨졌다면서 장난으로 계속 사진을 찍어줬는데, 사실은 걱정이 많이 됐다. 너의 연한 마음이 조금 부스러졌을까봐 걱정이 됐다.


우리는 항상 강남과 홍대 사이를 누빈다. 진심과 농담이 반반 섞여 이촌 한강 정 가운데가 우리의 중간 지점이라며 헤엄쳐서 만나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낄낄 웃기도 했다.

오늘은 서울숲에 갔다. 곤이는 이곳이 처음이라 했다.


스무살 때 나는 촬영하러 서울숲에 자주 오곤 했는데, 이런 큰 공원 근처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수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내가 너무나도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벤치에 앉아 수없이 사람들의 지나침을 목격하면서 조금은 슬펐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함께 퇴사를 한 직장 동료이자 소중한 친구에게 새벽에 연락이 왔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엔 무척이나 괜찮아 보였는데, 사실 괜찮지 않다며 연락이 왔다.

자꾸만 울고 무기력하고 다시 우울이 찾아온 것 같다고. 병원을 찾아보다 내가 생각이 났다며 물었다. 지연 님은 괜찮아요?


그 물음에 조금은 멍했다. 그녀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내가 정말로 괜찮은지 그리고 그녀의 슬픔에 대해서.

그런 생각들이 뒤섞이고 다시 답장을 보냈다.


사실 저도 요즘 악몽을 많이 꿔요. 그게 조금 무서워요. 예전처럼 일어나서 현실과 악몽을 구분하지 못할까봐. 글이 잘 읽히지 않아요. 멍하니 누워있는 날이 많아요.

그런 말들은 삼켜냈다.


‘저는 괜찮아요.’

그녀는 다행이라며 웃었다.



숲을 걷고 저녁을 먹고 나왔다. 건강 때문에 술 담배를 멀리 해야하는 곤이와 할 것을 궁리하다가 결국에는 책을 읽으러 카페에 왔다. 우리는 늘 만나면 취하기 바빴는데 이렇게 아무말 없이 책을 읽고 있다.

건강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놓인 곤이는 내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그런 질문에 늘 말하곤 했던 게 있는데 말하고 나니 정말 그게 내 꿈인지 나도 모르게 되었다.

조금 더 생각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너와 함께 잘 늙어가고 싶다. 실없는 농담을 하고 서로의 유치한 사랑에 비웃고 절망은 때로 못 본 척 하면서도 구석진 곳에 마음을 숨겨놓고.

그 구석에서 네가 다시금 웃을 수 있도록.

곤이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오래 걷지 않아도 돼. 조금 걷다가 쉬면서 처음 보는 풍경을 함께 보고 내가 피우던 담배를 한 입 뺏어 피기도 하면서.


작년 겨울 나는 많이 아팠다. 약을 먹어도 먹어도 괜찮아지지 않았는데, 너는 그런 내가 잠을 자고 있을 때 몰래 내 메모장에 편지를 써주었지.

내가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인지 너는 빼곡히 적어주었다. 내가 살기를 바라면서. 그 순간 나의 미래가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요즘은 밤에 목성을 찾고 있다.

목을 뒤로 길게 늘어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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