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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ffyeon Oct 05. 2022

이름에 대하여

어렸을 때 나는 내 이름을 싫어했다. 그럴 때마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데 그러면 안 되지-라고 말하는 엄마의 음성은 자주 흐릿해진다. 정확히 말하면 내 성을 싫어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내가 싫어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첫째로 어감이 맘에 들지 않아서였고 둘째로는 내 이름을 써야 할 때 꾹꾹 눌러쓴 내 이름의 생김새가 남들보다 어설퍼 보여서였다. 같은 반에는 내 이름과 같거나 비슷한 아이들이 수두룩했고 선생님이 미묘하게 비슷한 이름의 그들을 부를 때 착각하게 되는 일들이 잦았다. 그때 느끼는 민망함과 동시에 생기는 묘한 박탈감이 싫었다. 흔하디 흔한 나의 이름.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지만 종종 낯설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개명을 원하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의 말대로 할아버지를 가장 사랑했고 나의 이름에 어떤 의미가 존재하든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생각해 보면 나는 나의 이름에 타당성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살아온 것뿐이고 살아갈 뿐인 시간들. 그런 시간들이 지루하고 따분했고 고운 풀이되기에는 내 마음에 썩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


당신의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난 타인의 이름을 자주 까먹는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건 불안 증세가 심해서일까 아니면 기억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일까. 세상에 수많은 지연들과 지영 혹은 지현. 그 어떤 이름도 상관없는 나는 지영이 될 때도 지현이 될 때도 어떤 마음의 변화랄 것이 없었다. 그저 나는 수많은 어감 중 하나일 테니. 나의 이름은 발화되자마자 사라진다. 그 사실이 자주 쓸쓸해지는 건 살아있는 증거 중 하나일 테지. 아직까지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나의 이름. 그 어떤 것으로도 불려도 상관없겠다는 마음.


​​​



-수많은 이름들이 모여있을 때 나는 자주 무서워했다. 그 이름만큼의 삶이 허공에서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난 그것들 앞에서 사시나무처럼 흔들린다.



하나의 이름이 발화될 때 하나의 이름만큼의 절망이 느껴진다.


나는 오늘도 발화되지 못할 이름을 입속 가득 머금었다.


부르지 못할 이름들. 사라져 가는 이름들. 자주 까먹게 되는 이름들.


기억해야만 하는 이름들.


​​


난 내 이름을 꾹꾹 눌러쓰고 덧칠하고 있다.

진해져 가는 내 이름은 텅 비어버린 마음 같다.

나는 언젠가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


20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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