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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ffyeon Oct 25. 2022

10월 25일


오늘은 전에 다녔던 회사 사람들을 만나러 오랜만에 선유도에 갔다. 9개월 동안 수없이 양화대교를 건너며 이곳에 왔다. 정신없이 책을 팔고 책만 생각했다. 책만을 생각하는 시간이 좋았다. 어떤 책이 나왔다며 이 책의 기획이 좋다며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올 때면 나는 신이 나서 정신없이 떠들었다. 그럴 때마다 건너편에 앉아 계시던 편집자님께서는 환해진 내 얼굴이 좋다고 책이 그렇게 좋냐며 웃었다.



처음 이곳에 입사했을 때에는 리뷰어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기계처럼 사람들에게 우리 책의 서평을 올릴 것을 약속했다. 나는 3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약속을 하는 사람이었다. 종종 무례한 사람들에게 시달리기도 했지만, 어떤 다정한 사람들은 나의 일상에 대해 물어봐주기도 했다. 내가 늘 야근하는 것 같다며 걱정해주기도 했고, 자신을 다시 찾아주어 고맙다고 말해줬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뭐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어쩔 줄 몰라했다.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한 줄 한 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최대한의 다정함이 담겨있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도 모르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만났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서평을 부탁해서 고맙다며 지난날에 본 바다 영상을 보내줬다. 그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봤다. 주섬주섬 이어폰을 컴퓨터에 꽂아서 바닷소리를 들었다. 내 마음이 고요해지길 바란다고 했다. 나는 좋은 풍경을 함께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답했다.



책이라는 물성이 좋다. 사람이 최대한의 사람을 생각하며 쓴 문장들을 더 적확하게 닿기 위해 사람이 다듬고 만들어내어 사람이 읽는다.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좋다.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것처럼 나무는 나무를 생각하니까. 어떻게든 가닿으려는 마음도 좋다. 이해와 오해를 반복하고 얼굴도 마주한 적 없는 서로를 이어준다는 거.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여전했다. 여전히 승민 님은 목소리가 크고 밝고 사랑스러웠고 현진 님은 나에게 주려고 내가 좋아하는 피카츄 스티커를 핸드폰 케이스 안에 넣어서 보관하고 있었다. 수현 님은 늘 담배를 피우고 나면 작은 사탕 하나를 준다. 딱 두 개가 남아있었고 우리는 하나씩 입안에 머금고 혀로 굴렸다. 마침 딱 두 개가 남아있었네요. 정말 다행이다. 입 안이 환해졌다. 정아 님은 머리를 핑크색으로 염색했는데, 처음 식당에 들어갔을 때 조금 놀랐다. 머리도 핑크색 손톱도 핑크색 바지도 핑크색 심지어 그립톡도 핑크색. 그런 정아 님의 모습이 귀여워서 조금 놀리고 싶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변한 것들을 들으면서 아직도 그곳에서 많은 것들이 변하더라도 여전한 모습으로 일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좋았다. 갑자기 너무나 그리워져서 자꾸만 붙잡고 싶었다. 근데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를 모르겠어서 나는 또 오겠다는 말을 끝으로 다시 양화대교를 건너 내가 가야 할 곳을 갔다.



무턱대고 합정을 걸었다.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 있는 길을 걸으며 걸었다. 잠시 과거에 갔다 온 기분이었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바스락 거리는 단풍잎 소리를 들었다. 어수선한 마음은 자꾸만 나에게 질문한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모두가 다 외로운 세상에서 외롭지 않은 척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으면서도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무언가에 순식간에 지게 될 것 같아서. 간신히 붙잡은 것들이 사라질 것 같아서.

근데도 자꾸 아무나 붙잡고 말을 걸고 싶었다. 오늘은 과거를 붙잡았고 내일은 무엇을 붙잡게 될까.

나는 내 외로운 마음도 사랑할 수 있을까.




2022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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