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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ffyeon Nov 01. 2022

11월 1일  


요 며칠 동안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생긴 스트레스성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이 퇴사하면서 마법처럼 사라졌다가 근래에 다시 시작됐다. 점점 더 심해지더니, 이제는 거의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있다. 속도 마음도 더부룩하다. 음식도 감정도 마음도 어느 지점에서 막혀 내려가지 않고 한 곳에 오래 고여있는 기분. 몸은 내 마음보다 정직하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으로부터 나는 재빠르게 도망간다. 내가 마음으로부터 멀리 도망갈 때마다 몸은 말해준다. 너는 지금 한계야,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던 아침, 무수한 부재중을 듣고 일어났다.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나니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다. 배가 고파서 부엌으로 나갔다. 라면이 먹고 싶어서 물을 끓이려고 하는데 갑자기 내가 지금 배가 고프다는 사실도,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그 모든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어제 본 장면이 잊히지 않아서. 만약 내가 그날 친구에게 늦게 가자고 말 하지 않았다면, 만약.. 만약 그랬다면.


운이 좋았다는 말도 역겨웠다. 그냥 모든 것들이 말이 되지 않아서, 속이 더 메스껍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무수히 맑은 파랑이 아름다워서 슬펐다. 이태원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이 끊겨서 한강진역으로 넘어와 24시 나주곰탕집에서 첫 차를 기다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린 배를 채우는 일. 술을 마시면서 새벽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뿐. 계속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



옛날부터 나는 거대한 슬픔 앞에서 쉽게 무력해지고 애도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내가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도 이상해져서 내가 행복해도 될까 싶어서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그냥 막 아파했다. 살아있는 사람은 잘 살아가야 하는데, 나는 그게 잘 안됐다. 이제는 잘 애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근데 그게 아직도 좀처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우선은 바깥을 나왔다. 전날에 애매하게 술을 마셔서 그런지 일찍 눈이 떠졌다.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고 카페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담배를 피웠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을의 풍경을 보면서 친구와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도서관에 갔다. 빌려두고 계속 읽지 않아서 반납일인 오늘에서야 읽고 있다. 무해한 마음으로 가장 무해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다.

요즘 자주 밤에 담배를 피우러 나올 때면 고개를 올려 밤하늘을 바라본다. 서울인데도 요즘은 별이 정말 잘 보인다.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저건 화성이고 저건 목성이야 하면서 알려준다. 몇 년 전, 혼자 떠난 제주도 여행 중에 날이 맑다며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함께 별을 보러 갔었다. 그때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들려주는 별 이야기가 좋았다. 그 이야기 중에서도 반짝거리는 건 흔히들 위성이라 알고 있지만, 사실 위성은 그렇게 밝지 않아서, 저렇게 반짝거리는 것들은 대부분이 진짜 별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반짝거리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숨을 쉬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반짝거리며 숨을 쉬고 있는데, 나는 네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몰랐구나. 며칠 후 나는 혼자 지미 오름을 올랐고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끝까지 기억하고 싶다. 무수한 삶들을. 이름들을. 그리고 며칠 전에 알게 된 사실을 너희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반짝이는 것은 숨 쉬는 것이래, 저 반짝이는 것은 진짜 별 이래. 그날은 4월 16일이었다.



해가 지나면서 기억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아졌다. 최대한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아파하고 싶은데 내 일상을 지키면서 애도하는 방법은 아직도 모르겠다. 내면의 상실은 영원히 복구될 수 없으며 복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삶을 나아가야 한다. '삶을 나아간다'라는 게 무엇인지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누워만 있었다. 하루 종일 불안한 감정에 시달리다가 보고 싶은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 기분으로는 너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몸이 좋지 않다며 전화를 끊고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았다. 그러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고 금방 나가겠다며 끊었다. 그날 우리는 감정을 숨기기도 하면서 나누었다. 너는 잠꼬대처럼 어떤 말을 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답하지 않은 채 집에 돌아왔다.



오늘은 별이 보일지 잘 모르겠다.

사방의 슬픔이 어딘가에 막혀 내려가지 않지만 나는 내면의 상실이 영원히 복구될 수는 없으나 회복될 수는 있다고 믿고 있어서 천문학자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 밤하늘을 함께 보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좋겠어. 이런 비극 속에서 조금이라도 반짝거림을 나누고 싶다. 같이 슬퍼하고 같이 웃었으면 좋겠다. 모든 웅얼거림, 고여있는 슬픔, 상실의 고통. 그것들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테지만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서.




20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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