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인데도 다행히 아직은 많이 춥지 않다. 평생을 수족냉증으로 살아온 나는 추위에 정말 약하다. 그럼에도 바득바득 난방비 아끼겠다고 실내온도를 20도 정도로 맞추고 살아가는 중이다. 내 방은 웃풍이 심해서 책상에 앉으면 차가운 공기로 인해 발바닥이 얼어붙어 마비가 되는 것만 같은데, 그게 익숙해졌다. 연말 우울증이 심해졌다가 만 나이 개정법이 통과되어 내년에도 26살일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울한 게 조금 나아졌다. 그런 내 모습이 조금 웃기다. 미래가 조금 유보된 기분이다.
요즘 김병운 소설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을 읽고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어서 자꾸만 밑줄 치고 싶고 페이지 모퉁이를 접고 싶어지는 문장들과 마음을 너무 많이 마주하게 되어 곤란하다. 나는 그것들을 내 메모장에 계속해서 적고 있다. 적으면 적을수록 끝이 없어서, 이 장면들을 내가 까먹게 될까 봐 한 쪽을 그대로 적기도 한다. 나는 나를 앨라이로 명명했으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정말 그 삶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라는 것. 이전만큼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도 자각했다. 단순해지면 안 된다. 사람의 삶은.
내년에도 스물여섯이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아르바이트도 계속 고민했다. 남들은 다 회사에서 경력을 채우며 일하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내가 가고 싶은 이 길이 정말 맞는 걸까. 가족에게도 환대받지 못하는 이 일을 내가 계속 추구하며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그런 고민들에 휩싸였는데, 아주 단순하게 내년에도 내가 스물여섯이라니, 못할 게 없지! 하는 마음으로 가야 할 방향을 선택했다. 돈을 벌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배우자. 내가 환대받을 수 있는 곳으로 직접 가자. 내가 믿고 있는 세상이 도래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살아있자고.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향할 수 있고 그곳에서 우리는 결국 만나게 될 거라고 믿는다.
어제는 집을 가다가 집 앞 바 사장님과 마주쳐서 어쩌다 함께 놀았다. 손님이 없는 작은 바에 앉아서 떡볶이를 먹으면서 드라마를 봤고, 요즘 매일같이 상주하고 있는 사장님의 친구분과 함께 놀았다. 전 날에 내가 친구와 함께 들어와 얼마나 취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혼자 책을 읽다가 다 같이 고스톱을 쳤다. 새벽 다섯 시까지. 세 명 다 머리가 떡진 상태로 가게에서 나왔고 내일도 또 보자며 헤어졌다. 그런 우리가 조금은 웃겼다.
나는 책이 너무나 좋다. 너무나 좋다는 말이 식상하지만 그런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게 아쉽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되어서 더 좋아졌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속에서 묵묵히 더 좋은 책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쓰는 사람들. 유약하고 고요한 침묵을 사랑하는 거. 그런 게 너무 좋다. 우리의 마음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책으로 인해 느낀다. 아무것도 모른 채 느낀다. 나는 내 사랑에 대해 자주 의심하지만 문학에 대한 마음은 의심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도처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 어떤 형태로든 그 근처 가까이에만 있다면 나는 나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
유보된 미래만큼 더 거짓 없이 살아가고 싶다.
진짜 마음을 갖고 싶다.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그렇게 생각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