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밤바람은 온기와 냉기를 한 몸에 품고 돌담을 넘어 툇마루를 미끄러져 들어온다. 뜨끈뜨끈한 구들장 위에서 발갛게 익은 볼에 바람의 서늘한 손길이 와닿는다. 그 기분 좋은 감촉 끝에 아슴푸레한 수수꽃다리 향이 함께 실려 온다. 나도 모르게 숨을 한껏 들이쉬며 꽃향기를 내 폐부 깊숙한 곳에다 밀어 놓는다. 언젠가 마음이 먼지 한 톨도 없이 텅텅 비어버리면 모아둔 수수꽃다리 꽃향기로 가득 채울 수 있겠지.
할매, 춥지 않아? 그만 문 닫을까? 할매는 대답 없이 연청색의 낡은 원피스만 만지작거린다. 오래돼서 색은 바래고 치맛단 끝이 해진 자그마한 계집아이 옷. 그게 엄마 옷이었어? 할매의 입가로 소담스러운 실웃음이 배어난다. 그랬지. 학교 간다고 한 벌 해 입힌 건데, 유별스레 이 옷을 아끼고 좋아했어.
그랬다. 엄마는 하늘색, 민트색, 옥색 등 연한 푸른빛을 좋아했다. 그래서 하늘을 자주 올려다봤고 하늘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 높은 산을 찾아다니다 지난 겨울 지리산 구룡폭포 인근 절벽에서 실족사했다. 여자는 자기가 낳은 딸이 마흔이 되기 전에는 죽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 서른다섯이 됐을 뿐인데, 무책임하게.
나는 엄마 옷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보다 할매 손끝에서 조용히 흘러드는 짠내 가득한 따스함을 느꼈다. 할매, 할매는 자식을 가슴에다 묻었겠네. 나는 어디에다 엄마를 묻어야 하지. ……우리는 이제 하늘이 슬퍼서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