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모작 Jun 05. 2023

펫 다이어리 #1 이종(異種) 언어 해석 능력 고사

반려동물 금동이 관찰일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니 꽃이 되었다


                        이름은 금동이입니다



2017년 9월 7일생 수컷 푸들 금동이, 이름의 뜻은 金童  쇠 금, 아이 동 '금 같은 아이'이다.

반려동물 푸들 금동이


때는 2018년 1월, 동이가 우리 집에 온 첫날 이름이 지어졌다.


내가 만약 강아지를 키우게 된다면 꼭 독특하고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초코'나 '쿠키' 같은 흔한 이름보다는 특별한, '다니엘'이나 '톰' 같은 고급진 이름이 아니더라도 독특한.

흔하지 않고 고급지지 않은 것이 어째서 구수한 시골 스타일이 된 건진 모르겠지만.


동이의 털은 다른 푸들들과는 좀 달랐는데 대개 초코색이나 커피색과 같은 어두운 갈색 계열이 아닌, 샛노란 털을 가진 친구였다. 샛노래서 마치 시골서 집 지키는 '누렁이'라는 이름이 어울렸었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이 친구의 이름은 '노을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납득이 간다. 노을이 질 때 하늘색이 빛나듯, 동이가 가진 모색도 노을질 때 제일 빛나기 때문이다.


노을이라는 이름도 좋았다. “그냥 노을이로 부를까?” 잠시 고민했다만 우리 가족만의 새로운 이름을 선물해 주기로 했다.


2017년 황금개띠에 태어난 강아지에다 오래오래 살라는 바람으로 '금동이' 어때?, 그렇게 탄생한 이름 금동이.


"금동아~~"라고 부르는 순간 덜 발달한 짧은 다리로 깡충깡충 뛰어 오는데 바로 이 이름이다! 싶었다.

(최종 땅. 땅. 땅)


금동아 미안~!

지금에서야 솔직히 말하지만 내 이름이 뜻하지 않게 ‘금동이'라면 썩 기분 좋지 않을 것 같다.

얘가 원한 게 아닌데 인간들 마음대로 구수한 이름을 부여하다니, 강아지가 한자를 몰라서 다행이다.


금동이는 금동이로 살아온 지 어언 5년이다. 우리 가족은 금동이를 항시 '동이'라고 줄여 부른다. 그동안 성본(姓本) 변경도 했었다. 아빠 성을 따랐던 적에는 촌스러움이 극대화돼서 다시 엄마 성을 따랐다. 그랬더니 조금 나았다. 그리고 분기별로 다른 애칭도 탄생된다. '왕자야', '아가야', '김동근(금동 군의 비슷한 발음)', '아가베이비', '깐돌이' 등등… 아빠가 불러줄 땐 금동쓰, 엄마가 불러줄 땐 깐돌이, 누나가 불러줄 땐 왕자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니 꽃이 되었다.



아는 이모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식물한테 있는 힘껏 사랑을 주고 아껴주다 보면 걔네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니까?"


예전에 취재 차원에서 농업단장님을 만났을 때에도 이런 기이한 말을 들었었다.

"오이 농사에 오래 종사하신 분들은 오이가 분명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실 정도예요"


우리 동이도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정성스레 사랑스레 불러주다 보니 물 준 꽃처럼 어느새 무럭무럭 자랐나 보다.


가끔 동이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자면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사람 말을 너무 잘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사람처럼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설채현 선생님이 말하길 강아지들의 지능이 사람 나이 4살 정도와 같아도 복수나 질투 등의 고차원적 감정은 알 수 없다 하셨는데…?


하지만 같이 살고 있는 개집사는 오늘도 느낀다.

'쟤 이거 분명 나한테 복수한 거야', '쟤 배신감 느끼나 봐', '쟤 지금 다른 강아지한테 질투한다'

동이는 나에게 분명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신비한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금동이 관찰일기> 메모장을 켠다.




메모 1. 첫 번째 행동 관찰일기 : 싫거나 부끄러울 때 가슴에 고개를 파묻는 행동

대표적으로 동이와 산책할 때 자주 일어난다.
"동이야 걷자, 내려야지. 누나 무겁다."라고 말할 때면 내 가슴에 고개를 파묻는다.
이런 엽기적인 행동의 맥락은 보통 '싫을 때'나 '부끄러울 때' 행해진다는 거다.

귀여워서 옆얼굴을 바라볼 때면 '힝-' 소리를 동반하며 파묻기도 한다.
그리고 이 행동은 응용이 되어 진화하기도 한다.
걷기 싫어 고개를 파묻는다
메모 2. 두 번째 관찰일기 : 싫으면 손이나 발로 밀쳐낸다.

위의 첫 번째 행동에서 좀 더 진화한 행동 양상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품에 안겨 있다가 다른 사람이 안아주려고 하면 손과 발을 이용해서 힘껏 상대를 밀쳐낸다. 그리고 가슴에 고개를 묻는다.
웃긴 건 사람을 차별한다는 거다.
엄마나 아빠한테는 밀치는 행동을 아주 조심스럽게 한다.
감히 버르장머리 없이 굴기가 좀 그런가 보다.
저리 가란다
메모 3. 세 번째 관찰일기 : 마사지 중독이다.

예전에 강아지 마사지 유튜브를 본 적이 있다.
강아지도 사람처럼 혈이 많이 뭉쳐서 근육을 풀어주면 건강에 좋다는 설명이었다. 시간은 보통 15분에서 20분.
처음에 동이는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부담스러워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생각날 때마다 마사지를 해줬더니 점점 만족한 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언젠가부턴 마사지를 안 해주면 아침을 시작할 기운이 나질 않는 건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뭔가를 갈구하는 듯하다.
"마사지?"라고 말하면 벌떡 일어나 스스로 침대에 올라가 눕고 자세를 잡는다.
다음으로 유튜브로 오르골 배경음악을 튼다. 이제 마사지할 준비 완료.
조금 세게 주무른다 싶으면 고개를 들고 째려보기도 한다. "똑바로 안 해?"라고 하는 것 같다.
마사지 끝- 알려주면 기지개를 한번 켜고 살아난다.
동이도 사람처럼 아침을 시작하기 전에 몸을 풀어줘야 되는 습관이 생겼나 보다.
나는 이런 나의 노력이 분명히 쓸모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주무른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요 강아지님~~‘라고 하면서.
마사지 받는 게 부끄러운가보다
메모 4. 네 번째 관찰일기 : 이 동네 토박이 마냥 지리를 꿰뚫고 있다.

동이는 우리 동네 곳곳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지름길을 선호한다.
얼마 전 동네에 유일한 무인 애견용품점이 생겼다.
예전에도 크게 있었는데 폐업을 해서 이미 안경점으로 바뀌어버렸다.
종종 안경점이 된 곳으로 끌고 가 한 발짝도 안 움직이겠다며 고집을 피웠던 동이였다.
그럴 때마다 항상 난감했었는데 다시 새로 생겼다니,
오픈날이 되자 기다렸단 듯이 함께 간식을 골랐다.
 
그 이후로 산책 시 동이의 종착지는 항상 그곳이다.
산책 나올 때마다 슬금슬금 어딘가로 방향을 틀고 끌고 가면 '간식 사러 가자는 거구나'한다.
모르는 척하면서 따라가다 보면 늘 가는 그곳이 나온다.
어쩔 땐 일부러 한번 방향을 꼬기도 한다.
어라? 거기 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하지만
결국 다시 돌고 돌아가는 곳은 정해져 있다.
메모 5. 다섯째 관찰일기 : 나도 잘 못 하는데 강아지가 참을 인을 안다.

사람은 강아지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
강아지는 말해봤자 앙앙이나 월월처럼 짖는 소리를 낸다.
뭘 원하는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심심한 건지 산책하고 싶지 않은 건지, 알고 싶어도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대개 반대로 강아지는 보호자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 동이도 그렇다.
미용 선생님은 동이의 귀가 원래부터 크다고 했다.
너무 잘 알아들으니까 어쩔 땐 귀가 커서 고막도 큰 건가 하고 신체 구조적 장점을 의심해보기도 한다.
 
동이는 물을 마시고 싶었는데 가족들이 모두 핸드폰을 한다.
분명히 자기는 짖었는데 가족들은 심심해서 놀아달라는 소리인가 싶어 쳐다보지도 않고 '이제 그만 놀아~~!'라고 말한다.

동이는 오늘도 속상하다. "아니~ 물이 없다고! 물을 좀 달라고!"

답답했던 동이는 두리번거리며 표현할 방법을 찾는다.
거실 테이블에 놓인 빈 컵을 타깃으로 삼는다. 그리고 빈 컵을 보란 듯이 할짝거린다. 물 없다는 신호다.
"아~ 너 물 달라는 거구나!"하고 물그릇 있는 곳으로 가보면 정말 물이 한 방울도 없다.
이럴 땐 진짜 미안하다. 괜히 미안해서 "물 주세요라고 말해야지!"라는 시답잖은 농담을 한다.
 
이렇게 동이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 중
가장 미안할 때는 동이가 아플 때다.

동이는 나이가 어릴 땐 배가 아프면 집에서 처리를 못하는 습관이 있어 밖으로 나가자고 내내 울어댔다.
새벽 3시고 5시고 나가자고 해서 안 되면 정말 나가서 변을 뉘었다.
그럴 때가 가장 강아지 키우기 힘들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요즘 동이는 상당히 대견스러워진 것 같다.
새벽에 잠을 깨우는 게 미안한지 배가 아파도 나가자고 조르지 않고 집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집이 그만큼 편해져서일 수도 있을 테지만 가족들은 '동이의 배려'라고 여긴다.

최근 췌장염에 걸렸던 때에도 그랬다.
새벽 내내 1시간에 한 번씩 설사를 해도 꼬박 배변패드 위에 처리하고 잠에 드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다음날 병원에 가보니 원장님이 그러셨다.
"동이 많이 아팠겠는데요"
  
내가 너의 말을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오늘도 동물의 생각과 말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금동이의 신비로운 순간은 계속 열거할 수 있을 정도로 많다. 근데 더 하면 개불출이니까 이쯤 한다. 실제로 겪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그 조그만 머릿속의 많은 생각들을, 눈동자 속의 깊이를 나는 매일 상상해 본다. 상상하다가 또 어느 때는 알 것 같을 때가 있다. '너 혹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느끼고 있니?, 야... 너두?' 하면서 코를 맞대 보는 순간


꽃에 물을 주고 사랑을 주고 계속 말을 걸면 꽃이 정말 잘 자란다는 어른들의 말을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서로 다른 종끼리 각자의 언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난관에 부딪혀도 마음이 통하면 해결의 실마리는 잡히는 법   

  

나와 금동이는 매 해 '이종(異種) 언어 해석 능력 고사'를 치르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이기는 것은 금동이. 항상 나보다 동이가 한 수 위다.

나는 예복습을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 된다.

나중에 동이가 나이 들어서 아플 때도 서운하지 않게 잘 지켜줄 수 있는 보호자가 될 준비를 하기 위함이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 위대한 개츠비, 끝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침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