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모작 Jun 15. 2023

내 인생의 방문객에게 하는 위로이자 환대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온다는 것이다.


정현승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있다.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뭉클해지는 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지나치고,

마주치기도 하고 깊이 사귄다.

사람의 삶에서 유기적으로 이어져 멀리할 수 없는 게 인연과 관계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매일 다른 모습을 한 방문객들이

내 삶에 찾아오는 것의 연속이다.


어느 날에는 신비하게도

잠깐 스치듯 한 사람이

내 마음에 오랫동안 머물기도 하고

다신 안 볼 것 같았던 사람과

언젠가 운명처럼 다시 재회할 날도 있는 것처럼,

삶이라는 것은

우연과 필연을 반복하는 모래시계?

어쩌면 수많은 플랫폼을 드나드는 여행자들의 터미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전체를 안고 오는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감정을 가지고 각자의 인생에 오고 간다.


그중엔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하고 상대의 마음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

잠깐 문을 두드리다 지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오래전부터 내게 그의 인생 통째를 공유한 소중한 존재일 수도 있다.


부서지기 쉬워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란

‘아픔‘이 될 수도...

아니면 '잘못'이 될 수도...


대개 '아픔'이라는 감정의 부서지는 마음을 안고

누군가를 찾는 사람에게 상대는,

자신의 인생을 환대해 줄 정말 '유일한' 사람일 수도 있다.

'나'와 있으면 즐겁고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는 말만큼 감동적인 말이 있을까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너'라는 말만큼 감동적인 말이 있을까




예전에 정말 재밌게 본 드라마가 있었다.

서강준 이솜 주연의 jtbc 금토드라마 '제3의 매력'



남자주인공 준영과 여자주인공 영재는 20살 때부터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줬다.

하지만 영재에게 드리운,

피할 수 없던 청춘의 권태와 걱정들로

잠시 헤어졌던 그들은

27살에 만나 다시 사랑을 한다.

그렇게 몇 년을 연애하다가 결국 다시 이별을 맞는다.


사실 방영 중에는 말이 많던 드라마였다.

이 커플이 결국 다시 재회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시청자들에게

한 마디로 '배신감'을 느끼게 한 전개...

준영을 찬 영재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애까지 낳는데...

아이를 사고로 잃게 된 영재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알코올중독증을 겪다가

남편과 이혼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준영과 우연히 만난다.


준영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모습을 한 영재의 현실에 놀라고 계속 마음 쓰여한다.

준영에게 영재는 늘 언제나, 바람 앞에 굳게 서 있기만 할 것 같았던 모습이었는데...

그리고 영재는 20살 때부터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내면의 아픔을 마침내 준영에게 쏟아내고 만다.


준영은 그런 영재가 안쓰러워

영재의 끼니도 챙겨주고

그녀를 위로해 준다.

어찌 보면 늘 외로운 인생이었던 영재를 잘 아는 자신이

 언제까지고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자는 선택을 한다.


방영 중에는 이런 줄거리로 작가님이 상당히 욕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나름 드라마 팬이 많았는데,

예쁜 커플을 두고 이런 우울하고 암울한 전개를 펼쳤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는 이 드라마를 무조건 비난적인 시선만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온준영이 또다시 그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것에 무조건적인 비난만이 필요했을까?

답답하고 여전히 어리숙해 보일지도 모를 준영의 또 한 번의 환대는

불행하기만 했고, 여전히 불행한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나타난 영재를..

그저 다독여주고자 하는 '위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살다 보면 내게 잘못이라는 것을 안고 오는 사람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악역이나 빌런이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잘못을 저지르는데도

넓은 아량으로 빌런을 용서하는 현자 같은 주인공을 종종 볼 수 있다.

때론 아량을 베풀고 용서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참아주고 져주는 바보 같은 모습으로 보였었다.


그런데 세상의 많고 많은 단어 중에 '용서'라는 말의 의미와 이 말의 존재 이유가 있듯이  

아량을 베풀고 용서하는 게 결코 져주고 참아주는 바보 같은 짓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에 후회할 행동을 할 수 있는 거고

선택에 미련이 남을 수도 있는 거고

이기적이지만 염치 불구하고도 기대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거고...


이해할 수 없다는 마음이

이해하려는 호기심으로 성장할 때,

또는 맞춰가려는 노력으로 다시 태어날 때,

관계의 발전이 시작되는 것


내 마음이 부서진 마음을 하고 온 이들에게

다독여 줄 수 있을 바람을 흉내낸다면...

그 마음은 필경,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위로이자 환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


내 인생에 찾아온 모든 방문객들에게

나는 바람 같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쩐지 위로가 필요해 보이는 사람, 내 위로가 유일할 것 같은 사람

상대에게 보이는 이런 요소들이 어쩌면 제3의 매력이려나...


그래, 미워도 다시 한번!





작가의 이전글 펫 다이어리 #1 이종(異種) 언어 해석 능력 고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