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 제주 돌고래
여행하면 떠올릴 행운을 들자면, 낯선 이와의 우연한 만남과 그 설렘을 뺄 수 없다. 아는 지인이 제주 여행 중에 만난 인연에서 결혼까지 하는 걸 보면, 로맨스 영화에서나 있는 판타지만은 아닌 듯하다. 낯선 만남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제주도의 명물 돌고래와의 만남은 유명세에 비해 쉽지 않아 설렘이 남다르다.
제주도에서 지낸 지 일주일쯤이 지난 어느 아침 산책 길이었다. 그날 우리는 신창 풍차 해안도로에서 풍력발전기까지 이어진 해안길 따라 멀리까지 나갔었다. 날은 흐렸지만, 마침 만조라서 물이 해안 안쪽까지 들어와 있었다. 바다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파도와는 다른 바다 위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예닐곱 마리의 돌고래 무리가 눈앞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흥분해서 급하게 이 모습을 포착했다. 그리곤 왠지 모를 기분 좋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며칠 뒤, 우연히 '제11회 남방큰돌고래의 날' 축제가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에서 7월 17일 (일요일) 오후 15:00 ~ 18:00까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행사 주체 측인 핫핑크돌핀스는 수족관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춘삼이와 삼팔이가 바다로 돌아 가는데 많은 노력을 한 해양환경단체 중 하나로 기억한다. 그리고 공동 주체 기관인 MARC (Marine Animal Research and Conservation,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는 2013년 제돌이 방류를 시작으로 남방큰돌고래를 연구하는 연구중심 비영리단체라고 한다. 벌써 11회가 된 돌고래 행사가 가까이서 진행한다고 하니 가보기로 했다. 며칠 전 보았던 돌고래들 덕이 컸다.
남방큰돌고래가 없는 남방큰돌고래 축제였다. 하늘은 흐리고, 나무 그늘 하나 없는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핫핑크돌핀스와 MARC의 멤버들은 행사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행복한 표정은 잘 잊히지 않는다. 자신들의 신념대로 직접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그들이 열광하고, 요즘 유명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의 드라마)에 등장한 남방큰돌고래 이야기를 찾아봤다.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는 제주도 바다에서 약 12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평균 수명이 약 40년 정도인 포유류로 숨을 쉬기 위해 물가로 오를 때 이들을 볼 수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수심 100m 미만의 바다에서 주로 발견되며, 연안 가까이 살고 있기에 돌고래 관광, 해양 쓰레기, 연안 개발 등 인간 활동에 노출되어 많은 영향을 받는 해양 포유류이다. 남방큰돌고래도 다른 고래들처럼 사회성이 높아 무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다른 돌고래와 협력하는 등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산다고 한다.
남방큰돌고래가 유명하진 배경에는 2013년 환경단체, 동물보호단체 등을 중심으로 진행된 '불법포획 돌고래 방사 운동'이 있다. 지난 2009년 5~6월 제주 서귀포 성산읍 앞바다에서 포획된 남방큰돌고래 11마리를 제주 돌고래 공연 업체가 사들였다. 그중 제돌이는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져 돌고래쇼에 동원되었다. 2011년 7월 돌고래 포획의 불법성이 확인되면서 시민단체들이 돌고래 방류를 요구하는 시민운동으로 이어졌다. 2012년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의 방류가 결정되었고, 제주 바다에서 적응훈련을 시작했다. 2013년 6월 22일, 훈련 중이던 삼팔이가 가두리를 빠져나가는 소동이 있었는데, 27일에 야생에 적응한 삼팔이가 목격되면서 방류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2013년 7월 18일 제돌이와 춘삼이가 마침내 방류되었고, 지금까지도 제주 해안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고 있다. 세 남방큰돌고래의 방류는 불법 포획된 돌고래를 정부 및 지자체가 방류하기로 결정한 첫 사례로, 남방큰돌고래의 야생 방류 과정은 세계의 큰 이목을 끌었다.
그 이후 2014년에는 복순이와 태산의 방류 운동이 전개되었고, 2015년 7월 6일 방류되었다. 특히 이때 방류된 복순이는 억류 당시 기형과 우울증으로 불안했던 시기도 겪기도 했는데, 자연으로 돌아가서 잘 적응하며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2017년에는 금동이와 대포가 방류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인 2022년 8월 3일, 마침내 수족관에 남아있던 마지막 남방큰돌고래 '비봉이'의 방류 결정이 내려졌다. 변호사 우영우의 바람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핫핑크돌핀스의 자료에 따르면, 남방큰돌고래는 모두 방류되겠지만, 여전히 21마리의 벨루가와 큰돌고래가 수족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비봉이의 기쁜 소식과 함께, 행사 중에 들었던 당부를 전하려 한다.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제주도 모든 해안에서 발견되지만 특히 대정읍 해안 쪽에서 자주 목격된다.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돌고래 선박 관광'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은 남방큰돌고래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하니 자제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선박 관광이 규정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운용돼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돌고래 관찰은 해안에서 쌍안경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제주바다를 바라보면 어느 순간 남방큰돌고래 떼가 보일 날이 있다. 그래서 그것이 행운처럼 느껴진다. 돌고래를 보려고 쫓아다니는 건, 바다를 보는 것도 행운도 아니다. 그냥 돌고래를 보려 해서 보았을 뿐이다. 바다를 들여다보아야, 그 행운이 당신을 찾을 것이다.
핫핑크돌핀스 홈페이지 http://hotpinkdolphins.org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MARC) 홈페이지 https://marckorea718.org
세계자연기금(WWF) 남방큰돌고래 보고서 https://www.wwfkorea.or.kr/bbs/board.php?bo_table=korean_report&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