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 바다 쓰레기
7월 17일 (일요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에서 열린 남방큰돌고래의 날 축제는 오후 3시 시작이었다. 행사 당일은 구름 많은 더운 날이었지만, 행사장에는 시작 전부터 축제 준비로 많이 붐볐다. 우리는 초청가수의 리허설이 진행되던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이날 모든 행사는 친환경적으로 운용되었다. 식물성 먹거리(비건 음식)만 판매됐고, 개인 식기, 물병, 장바구니를 챙겨 와 달라는 공지를 덧붙여 일회용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우리 같이 개인 식기 지참을 못한 사람들에게는 푸른 컵을 빌려주고 사용 후 다시 반납하도록 했다.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는 돌고래를 위한 행사만은 아니었다. 아내와 함께 참여했던 행사 워크샵 중 하나인 "비치코밍"은 해변으로 떠밀려온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보호 활동을 말한다. 참가 신청을 했더니, 노란 마대자루와 장갑을 하나씩 받았다. 자루 하나를 바다 쓰레기로 채우는 행사였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비치코밍 에 참여해 한 자루씩 쓰레기를 담아 갔기에, 남은 쓰레기가 별로 없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해안으로 몰려와 바위틈으로 숨겨진 쓰레기는 여전히 많았다. 특히 어획용 도구로 보이는 깔때기가 많았다. 부표나 밧줄은 돌 사이에 껴서 잘 빠지지 않았다. 언제 해안으로 몰려와 얼마나 방치되어 있었을지 알 수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중국어나 일본어가 쓰인 플라스틱 용기도 종종 있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환경 문제는 한 두 나라의 문제가 아니었다.
백수가 되기 전, 그러니까 연구소에서 일할 당시, 인간 활동이 극도로 제한된 북극 해빙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는 잘 믿기지 않는 뉴스를 보았다. 당시에는 인간 활동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광범위하고 심각한 수준이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면서도, 정작 환경 보호나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노력은 사소했다. 고작 해봐야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사용한다거나, 출/퇴근은 대중교통 혹은 걸어서 한다거나, 일회용 제품 덜 쓰기 정도였다. 그나마 신경 쓴다는 수준이 이 정도이다. 집에서는 여전히 일회용 포장 용기에 담겨오는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재활용 쓰레기장에는 언제나 넘칠 듯 가득 담긴 플라스틱과 비닐 위로 집에서 나온 재활용 쓰레기를 눌러 담았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건 없었다. 오히려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의 심각성은 연구과제를 따내기 위한 좋은 핑곗거리로 활용되었다.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는 초대가수 훌라와 사우스카니발의 신나는 공연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사실 이 축제는 불편했다. 참가자는 자신의 컵과 식기도구를 준비해야 하고, 수고롭게 바닷가 쓰레기를 자진해서 주워야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축제를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공연을 관람하는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그들의 활기찬 웃음이, 고작 염려만 하는 나에게 작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분명 생각만 하는 나와는 달랐다.
해양 쓰레기 심각성을 느낀 건 이 날의 비치코밍 만이 아니었다. 밤사이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던 날이 있었다. 마침 만조 시기와 겹쳤는데, 다음날 아침에 해안 산책을 나갔더니 갖가지 종류의 쓰레기들이 해안을 따라 쌓여있었다. 어망이나 스티로폼 부표를 비롯한 각종 플라스틱들이 널려있었고, 그 사이를 게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바다로 돌아갈 비봉이도 어업활동 중에 버려지는 어망에 걸려 곤란할 수 있다. 이미 낚싯줄이나 폐어구에 걸려 고통받고 있는 남방큰돌고래가 여러 차례 목격되었단다. 어딘가에서 버려졌을 쓰레기가 제주에서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의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제주만 문제도 아니다. 해양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해양 사막화, 산성화 문제 등 해양 오염과 환경 변화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해결책은 단순한 일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우리가 쓴 컵을 충실히 되 가져가는 일처럼, 작고 사소한 일부터 행동해 나가는 일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 남방큰돌고래의 날는 이미 그렇게 행동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행동하는 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