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뭔 말인가? 하실 수도 있다.
학습물 참고서 전용 편집기와 글꼴이 따로 있나?
그건 아니다.
처음으로 전산 사식 및 출판 업계의 일을 시작할 때, 우리 회사의 거래처 대부분이 학습물 출판사 이거나 관련 자료의 편집/조판 회사였다. 그 회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조판 기기가 일본의 샤켄이라고 하는 업체의 조판 편집기였고, 그 장비의 최대 강점이 학습물 참고서의 편집이었다.
나는 샤켄의 호환 장비의 글꼴과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에 잠시 참여했었다.
그러니까 우리 눈에 익은 학습물의 글꼴과 조판 형태는 바로 일본 샤켄의 것이었고, 그 장비의 글꼴들이 바로 학습물 글꼴의 스탠더드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 당시(거의 30년 전) 거래업체들에서는 "수식학참"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말이 무엇인지 궁금했었는데, 그 말은 수식과 학습참고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등장하는 말이었다.
20~40대 연령의 편집 입력 인원은 대부분 여성들이었고, 그들이 수많은 코드를 조합하여 편집을 하는 과정을 보면, 웬만한 컴퓨터 프로그램의 코딩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WYSIWYG(What you see is What you get - 출력되는 모습이 편집 화면에 그대로 보이는...)도 되지 않는 편집 화면에서 코드만으로 책을 편집했었다.
편집 코딩을 시뮬레이션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시작><페이지사이즈 210,297><페이지 마진 20,20,30,30><행장 100><폰트 명조체, 10p, 100%><행간 110%><어간 3,5,10>여기에 문장을 넣는다<한글용.><수식시작>코드들.....<수식끝><끝>
위의 <> 안에 있는 부분들은 해당 코드를 의미하는 특수기호 형태의 문자가 있었고, 각각의 내용은 현재의 워드프로세서의 옵션에서 수정하면 화면에 수정되어 보이는 내용을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의 편집 인력들은 화면에 보이지 않는 출력 화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자료를 입력한 것이다. 물론, 시출력을 해보며 교정을 보았지만, 그들의 능력은 현재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능력과 다를 바가 없었다.
독자들이 익히 알고 있을 "동아출판사", "금성출판사", "교학사", "천재교육", "지학사" 등 대부분의 참고서 출판사들이 샤켄 전산 사식 장비를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국정교과서", "대한교과서"등의 교과서 업체 역시 이 장비를 사용했다.
그들이 만든 수많은 사전과 국어, 영어, 수학 참고서 등이 모두 그 장비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세상이 바뀌어 그 장비는 매킨토시로 바뀌고, 윈도즈 장비로 바뀌었지만, 출판 경력이 오랜 분들은 현재의 편집 정밀도가 하향 평준화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이유를 샤켄 장비가 사라진 것으로 보기도 했었다.
오랜 기간 그 장비로 만든 책을 보아온 분들에게, 가장 한글에 맞는 편집 조판 형태를 보여주는 장비가 바로 샤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샤켄 장비로 만들어진 수식의 모습이 가장 우리 눈에 익은 수학 참고서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당시에 새로운 글꼴을 샤켄 장비에 넣기를 원했던 출판사들을 위해 새로운 글꼴을 만들고, 외자(外字)라고 불리는 코드에 없는 특수 기호를 만드는 작업을 하기도 했었다.
출판사들은 그들이 원했던 수많은 출판용 기호들을 장비에 심어 원하는 학습 참고서를 만들어 냈다.
당시에 호환 장비용으로 만들었던 특수 기호들 몇 가지를 소개한다. 작은 도안같이 보이는 아래의 글자들은 모두 자기 코드를 가진 글자들이었다.
샤켄 조판기가 가진 가장 우수한 기능은 수식의 편집이었다.
수식 편집은 페이지당 편집 단가가 일반 조판의 몇 배가 되는 고가의 작업이었고, 식자실에서 최고참 오퍼레이터가 필요한 기본 코딩을 작업하고, 몇 번의 교정을 통하여 완성을 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해당 수식 관련 글자들이 "샤켄 중명조"의 굵기에 맞춰져 있어서 수학 참고서의 기본 한글은 "샤켄 중명조"글자로 인쇄해야 한다고 이야기 들었다. 물론 그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많은 기호들 중, 초등학교 산수 교과서에 사용된 숫자들은 "태-산수둥근고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회사 사이트 "더폰트(www.thefont.co.kr)"에서 "태-둥근고딕" 한글과 판매되고 있다.
또한 당시에 사용했던 다양한 학습 참고서의 특수 기호들은 당시에 사용했던 외자 등록의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에 있다.
다양한 기호를 무료로 제공하고, 가급적이면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글자를 저렴한 비용으로 등록하여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공개할 생각이니 혹시라도 자신이 가진 도안을 글자로 등록하기를 원하고, 직접 글꼴 작업을 하기 어려운 분들은 프로그램 발표 후 등록 요청을 해주시길 바란다.
스스로 글꼴을 간단히 만들고 싶은 분들은 이곳에 연재한 글꼴 만들기 강좌를 참조해서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것도 어렵지 않으니 한번 시도해 보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