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결혼 후 1년이 지났다. (1)

결혼 1주년을 기억하며, 남기는 부부에세이 - 남편 글


작년 6월 24일 결혼을 하고 부부로 지낸 지 1년이 되어간다. 결혼은 우리 부모님도, 동생 누나도,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하는 것이지만, 나의 일이 되면 절대 가볍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결혼 1주년을 기록하는 에세이를 제안했다. 나야 10년 동안 꾸준히 글을 써왔지만, 아내에게는 생소한 일이라 조금 무리한 부탁일 수 있는데,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여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왜 굳이 글로 남겨야 하겠냐고 묻는다면, 순간은 지나가지만, 글은 오래도록 남는다. 감정은 사소한 계기에도 변하고 잊게 되지만, 적었던 글을 읽으면 다시금 그때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 부부가 느낀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싶어서다.


결혼 1주년이라는 주제를 글로 남겨야겠다 했을 때, 1996년에 초연하였던 뮤지컬 렌트의 ’Seasons of Love’라는 곡이 머리에 맴돌았다.


‘오십이만 오천육백 분의 귀한 시간들 우리들 눈앞에 놓인 수많은 날
오십이만 오천육백 분의 귀한 시간들 어떻게 재요 일 년의 시간’


1년은 52만 분이 넘는 시간을, 사계절을, 수많이 함께한 식사와 여러 순간을 남긴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아서 하나로 만들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탄생한다. 사랑에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함께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온보딩(On-Boarding: 적응기간)


아내와 나는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MBTI도 맨 앞 글자만 바꾸면, 같아진다. 결혼하기 전에는 생각하는 방식도 비슷하고 생활 습관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슷한 둘을 가져다 놓아도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난다.


나는 잠자는 시간보다, 깨어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아내는 깨어있고 싶어도 충분히 잠을 자야만 하루를 버틴다. 나는 집에 오면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씻는 걸 좋아하지만, 아내는 씻고 나서 집에서의 시간을 시작한다.


사소하다고 여겼던 것이 반복되고 쌓이면 커지고 서로를 다르다고 단정하게 된다. 처음 같이 살고 한동안은 큰 차이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신혼부부가 겪는 문제가 우리라고 해서 피해 가지 않는다.


한 예로, 나는 혼자서 오래 살아왔던 터라, 집안일을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빨래하고 청소를 한다. 혼자서 살 때는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들이 같이 살기 시작하니깐 조금 억울해졌다. 그러다 보니, 신경에 날이 서고 상대방의 행동을 더 지켜보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툭하고 뱉었다.


’희생정신이 부족한 것 같아.‘


그때야 아내도 여태까지 쌓였던 마음을 털어놨다. 나도 많이 참았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자신이 집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줄줄이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여태까지 아내가 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나의 비뚤어진 마음이 상대방의 노력을 알아보지 못하게 한 것 같다. 결코, 아내도 나 못지않은 헌신을 해왔음에도, 오직 나만이 우리 관계에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여태까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참아왔던 아내가 나보다는 훨씬 성숙한 사람인 것 같다. (먼저 화내면 지는 것이다.)


관계에서 내가 얼마만큼 했는지를 계산하는 순간 아무리 작은 관계에서도 고립되고 만다. 결국, 함께하는 것이 즐겁기 위해서는 함께인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 부부도 온보딩의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함께인 것에서 즐겁다.



개그코드


결혼하기 전 아내는 병맛 개그코드라면, 칠색 팔색을 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블랙 코미디, 개연성이 없는 소리, 파괴된 형식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개그를 선호한다. 물론, 연애 때는 아내가 워낙 이런 개그를 이해도 못 할뿐더러, 싫어했기 때문에 굉장히 자제하였다. 근데 막상 결혼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사람이 변할 리는 만무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결혼 전에는 왜 이런 모습을 감추고 있었냐고 종종 이야기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재미있으면 재미있다고 이야기해도 된다고 되받아친다. 이렇게 팽팽한 줄다리기는 아직 이어지고 있다.


병맛이라는 것은 원래 형식을 뒤틀고 나오지 말아야 할 타이밍에 나오는 것이 포인트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반복이다. 무조건 반복. 아침에도 하고 저녁에도 하고 자기 전에도 하는 것.


최근에는 미국 동요의 가사를 개사해서 자기 전마다 흥얼거리는데, 처음에는 너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얼마 전에 회식이 끝나고 피곤해서 씻고 바로 잤는데, 다음날 아내가 왜 그 노래를 안 불렀냐며, 핀잔을 주었다. 역시 반복에는 장사가 없다. 자꾸자꾸 듣고 반복하니 안 하면 허전하고 이제는 그 노래가 좋다고 했다.


매번 아내는 재미없다고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이미 눈은 웃음기가 가득하다. 내가 보기엔 이제는 개그 코드가 맞추어진 것 같다. 사소한 것으로 함께 웃고 떠들 수 있기까지 365일의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의 같이 살날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에 개그코드가 맞춰졌다.


역시 개그는 반복


Seasons of Love: 사랑의 계절


나는 사계절 중 봄을 가장 좋아한다. 봄에는 모든 생명이 겨우내 웅크렸던 몸을 한 껏 피고 다시금 세상으로 나아가는 시기다. 봄에는 생기가 있고 특별한 것을 하지 않더라도 햇살과 바람, 풀 냄새만으로도 충만함을 느끼게 한다.


지금 우리 부부의 계절은 봄이다. 이제 결혼 1주년이라 얼마 되지 않은 시작 단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만함을 느낀다. 우리 관계에 부부라는 씨앗이 뿌려졌고 봄의 햇살을 통해, 차츰 진정한 의미의 부부로 성장하고 있다.


사계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봄이 있으면 절정의 여름이 있고 열매가 무르익는 가을이 지나면 혹독한 겨울이 온다는 것을 말이다. 이 세상의 순리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맞이하기 때문에 여태까지의 삶보다는 덜 외롭고 덜 추우리라 생각한다. 겨울 내내 바라왔던 봄이 다시 왔을 때는 그 전의 나무보다 더 큰 나무로 자라날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뿌리는 깊어지고 관계는 점덤 더 완전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매해 결혼을 기념하며, 부부 에세이를 쓰고 싶다. 물론 앞으로 아이가 생기고 사회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하고 개인적인 사정이 겹치면, 그 마음은 희미해질 수 있다. 다만,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이 글을 보면서 다시금 지금의 계절을 기억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뮤지컬 Rent의 ‘Seasons of Love’의 가사를 띄우며, 글을 마치고 싶다.


오십이만 오천육백분의 귀한 시간들

우리들 눈앞에 놓인 수많은 나날.

오십이만 오천육백분의 귀한 시간들

어떻게 재요?

일년의 시간.


날짜로?

계절로?

매일 밤 마시는 커피로?

만남과 이별의 시간들로?


그 오십이만 오천육백분의 귀한 시간들

어떻게 말해요? 산다는 것을.


그것은 사랑.

그것은 사랑.

그것은 사랑

 

사랑으로 느껴봐요

 

오십이만 오천육백분의 귀한 시간들

그 많은 인생을 어찌 살아갈까

 

오십이만 오천육백분의 수많은 날

인생의 가치를 어찌 판단을 하나

 

그녀가 진실을 안걸로

누군가 고통을 안걸로

또다른 방법으로

죽은 이유들로

 

다함께 노래해 우리 인생을 위해

자 친구들과 함께한 일년을 노래해

 

기억해요 사랑

기억해요 사랑

기억해요 사랑

사랑으로

 

(영원히 영원히 그 날을 영원히)

간직해요 기억해요 사랑


아내 편은 다음 주 같은 시간에 업로드 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