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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Jun 01. 2019

#4. 두찌 출산 후기 (1)

다사다난 출산 전야

벌써 둘째의 출산 예정일이 지났다.

첫째도 물론 예정일을 넘긴 40주 4일에 낳긴 했지만, 둘째는 좀 더 빨리 낳을 거란 의사 선생님과 주변의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인지 40주가 넘어가자 마음이 조금 다급해졌다.


예정일은 월요일, 남편의 생일은 수요일, 시아버님의 생신은 토요일. 참 난감하다. 둘째의 생일이 남편이나 시아버님과 겹치는 것은 원하지 않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의 생일인 수요일 오늘은 소식 없이 지나가는 중이고, 시아버님 생신 전날인 금요일로 최종 보루인 유도 분만 일정을 잡았다는 것이다.


아참, 얘기하자면 오늘 수요일은 참 정신이 없었다.

늦잠 잔 바다를 부지런히 챙겨 등원시키고, 하원 후 간식거리로 먹일 빵을 사러 다녀왔다. 앗 그런데 집에 도착하고 보니 남편 생일 케이크 사는 걸 깜빡했지 뭔가. 이 바보야... 넋을 잃고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고 다시 집을 나섰다.


작지만 하얗고 맛있어 보이는 생크림 케이크 하나를 골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바다가 열이 나요. 38.4도네요.”

이럴 수가... 망연자실, 나를 위한 단어구나.


만삭 of 만삭으로 말만 해도 숨이 찬 나는 차마 바다와 이 더위에 10분 거리의 소아과를 걸어갈 용기가 없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끌고 어린이집으로 갔다. (집에서 어린이집 까진 걸어서 5분 거리다...) 몸이 뜨끈뜨끈 한 바다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아, 나는 왜 등 하원 때 디럭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가. 10kg에 육박하는 디럭스 유모차를 힘겹게 접어 트렁크에 실으며 생각했다.)


열 외에 여타 증세가 없어 집에 가서 해열제를 먹이고 지켜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고, 다행히 해열제를 먹은 바다의 열은 금세 내렸다.


한숨 돌리는 듯 했지만 오늘은 남편의 생일. 이대로 쉴 수는 없다. 저녁 메뉴는 남편의 최애 삼겹살 구이. 그나마 간단한 메뉴이긴 하지만 놀아달라고 다리를 붙들고 매달리는 바다를 달래며 야채를 씻고, 오이와 파무침을 만들고, 쌈장을 만들고, 밥을 올리니 그다지 간단하지 만은 않게 느껴진다. 간식을 줘 가며 달랜 바다가 거실에 흩뿌린 빵 부스러기와 쏟은 우유를 중간중간 닦고, 옷이 다 젖었으니 이 참에 목욕도 시키기로 한다. 목욕 후 알몸으로 뛰어다니는 아기를 달래 겨우 옷을 입힌다.


잠시 후 남편이 집에 왔다.

너무 반가운 나의 여보. 그런데 남편의 표정이 어둡다. 발 통풍이 재발해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퇴근한 남편, 너무 아프다며 다리를 절뚝인다.

이럴 수가... 2차 망연자실, 나의 지원군은 현재 내가 지원해 줘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또한 다행히 집에 온 남편의 컨디션은 점점 나아지는 듯했고 (고기를 한점 두점 먹다 보니 남편 표정이 평안해졌다. 고기 덕인가. 준비한 내 정성 덕인가. 고기 덕인 듯.), 생일 축하 노래에 맞춰 바다와 함께 초를 불 즈음에는 우리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남편 생일 축하 케익에 꽂힌 촛불을 불고 난 뒤. 행복은 소소한 순간 순간에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며. 행복하여라.

이후 나는 바다의 잘 준비와 거실 정리를, 남편은 설거지를 했고, 우리는 무사히 바다를 재우고 육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하루 마무리는 끝나지 않았다. 언제 출산할지 몰라 매일매일이 긴장 상태인 우리의 하루 마무리 의식은 샤워하기 이기 때문이다. 첫째를 낳던 날 새벽 양수가 파수되었을 때 병원 가기 전에 꼭 씻어야 한다며 느긋히 샤워하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는 남편과 한 약속이다. 둘째는 초스피드 출산이 될 수 있으니 꼭 미리 샤워하고 잘 것. 우리는 번갈아 샤워를 마친 뒤 최근 며칠의 저녁 내 했던 같은 말을 또 이야기했다.

“오늘 출산 준비 완료!”


침대에 몸을 뉘이며 생각했다.

‘오늘 나 무리한 것 같아. 꼭 그 날이 오늘이 될 것만 같아.’


‘아파’

얼굴이 화끈할 정도의 배 통증이 느껴져 저절로 눈이 떠졌다. 얼른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0분.

바다를 낳던 날 양수 파수가 있던 꼭 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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