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How Much Is That Doggie in the Window>, 남편 지키기
Sung by Patti Page
How much is that doggie in the window?/ 창가에 있는 강아지 얼마죠?
The one with the waggily tail/ 꼬리 잘 흔드는 강아지 말이예요
How much is that doggie in the window?/ 창가에 있는 강아지 얼마죠?
I do hope that doggie's for sale/ 판매하는 강아지라면 좋겠어요
이 곡의 배경은 펫샵이다. 요즘은 애완동물을 사고파는 것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자각으로, 가급적 분양의 형태로 바뀌고 있다.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로 명명하자는 움직임도 정착되는 분위기인 것 같다.
이 곡이 발표된 1950년대의 고전적인 미국 사회를 상상하면, 펫샵은 귀엽고 앙증맞은 강아지를 키우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 대한 상징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펫샵에는 다양한 종류의 강아지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길목에서 펩샵의 큰 통유리창 앞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있는 인형 같은 강아지들을 손가락으로 불러세우곤 했더랬다. 강아지를 무서워하면서도, 창 너머로 보이는 극강의 귀여움 앞에서는 발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노래가 유치원 영어책에 버젓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뜨악했던 적이 있었다. 노래 중간중간에 강아지가 왈왈 짖는 소리가 나오는데, 섬세하게 도드라진 그런 디테일이 이 노래를 유쾌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갑작스런 강아지 소리로 얼굴 근육이 무장해제되어 미소로 번져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여운 강아지 소리가 나온다는 설정과, “~는 얼마예요?”라는 표현을 연습하기 좋은 학습 자료라 해도, 이 노래가 유치원 영어책에 실려있다니. 하기야 어린이들이 저변에 깔려있는 함축적인 의미를 어찌 알 수 있으랴. 그저 활자로 드러난 부분, 단순하게 들리는 표층의 의미만 알아도 대견한 일이다.
I must take a trip to California/ 난 캘리포니아로 출장을 가야 해요
And leave my poor sweetheart alone/ 그래서 가여운 연인을 홀로 남겨둬야 해요
If he has a dog he won't be lonesome/ 그가 강아지를 갖게 되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
And the doggie will have a good home/ 그리고 강아지도 좋은 가정을 갖게 될 거예요
여자가 강아지를 사고자 하는 이유는 캘리포니아로 출장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집에는 남편 혼자 외롭게 있게 될테니 강아지라도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남편은 강아지의 재롱으로 외롭지 않을 것이고, 강아지로서도 가정이 생기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리라.
그러나 이 노래의 내용은 가사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굳이 페미니즘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가정 내에서 아내의 역할을 풍자한다고 할 수 있다. 여자는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해 온갖 귀여운 애교를 뿜뿜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녀의 애교에 압살당한 남편은 다른 데로 눈 돌릴 틈이 없을 정도로 아내에게 충실했던 것 같다. 아니, 적어도 아내는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아내가 갑자기 집을 비우게 되었네? 따라서 그녀가 펫샵에 간 이유는 자신의 대체품을 찾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부재로 인해 남편이 외로움을 느끼고 허튼 짓이나 뻘 짓을 할 수도 있고, 그렇게까지는 않더라도, 남편 혼자 둔다는 것은 영 안심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아내의 대단한 착각이 전제되어 있는데, 남편은 자기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실은, 혼자 두면 미친 듯 더 좋아라 할텐데, 아무리 단단한 부부라도 가끔은 혼자만의 자유로운 숨구멍이 필요한 법이기에.
I read in the papers there are robbers/ 신문에서 읽었는데 강도들이 있대요
With flashlights that shine in the dark/ 어두운 데를 밝혀주는 손전등을 가지고 있다는데
If he has a doggie to protect him/ 그를 보호해 줄 강아지가 있다면
He’ll scare them away with one bark/ 한 번만 짖어도 그들을 겁에 질려 달아나게 할거예요
어쩌면 그녀는 “슈퍼우먼 컴플렉스”(superwoman complex)가 있어 집안일과 사회생활을 완벽하게 잘 해낸다고 생각할런지 모른다. 여태껏 야생의 남편을 조련하여 순둥이로 만들었고, 자신이 의도한만큼 살림도 잘 꾸려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그랬을지도.
화자는 흉흉한 강도 사건이 생긴다 해도, 강아지가 있어 한 번 왈 하고 짖으면 강도가 겁에 질려 달아날 것이라고 믿는다. 강아지 한 마리만 있으면 자신을 대신해서 남편의 안전도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꼴랑 쪼매난 강아지 한 마리가 짖는다고 강도가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다고? 이쯤 되면 그녀는 순진하거나 맹하거나, 아님 둘 다 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신문을 읽으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중산층 여자라면 신문 읽는 지성미도 갖추어야 되기에.
I don't want a bunny or a kitty/ 난 토끼나 고양이는 원치 않아요
I don't want a parrot that talks/ 말하는 앵무새도 원치 않아요
I don't want a bowl of little fishes/ 작은 물고기가 있는 어항도 원치 않아요
You can't take a goldfish for a walk/ 금붕어를 산책시킬 수는 없거든요)
그녀의 ‘내 남편 지키기’ 내지는 ‘내 남편은 내가 지킨다’는 굳은 결심은 강아지 사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완벽주의자의 다음 단계는 왜 하필이면 ‘강아지’ 인지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토끼, 새끼 고양이, 앵무새, 작은 물고기 등 자신의 귀여움과 견줄만한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쭉 나열해본다.
토끼나 새끼 고양이는 강아지만큼의 애교가 없다. 토끼의 앞니는 귀엽기 그지없지만 당근 먹는 데나 최적화되어 있을 뿐이다. 새끼 고양이는 무심하고 시크한 태도가 매력이긴 하지만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앵무새는 또 어떤가? 말하는 앵무새는 싫다고 하는데, 말하는 것은 자기만으로도 충분한데, 여행 다녀온 뒤, 남편이 앵무새와의 대화에 마음을 쏙 빼앗길 수 있음을 경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앵무새도 퇴짜를 맞는다.
어항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도 즐거움을 주지만, 물고기는 산책을 시킬 수 없다는 황당한 이유로 퇴짜를 맞는다. 실은 그녀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어항의 물을 갈아주어야 하는, 여간 번거롭지 않은 일이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 되기에 ‘물고기’와 ‘산책’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들먹였을 수도 있다.
이렇듯 그녀는 맹한 듯 영리하고, 영리한 듯 맹한 구석이 있다. 이 노래의 화자가 밉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이리라. 그녀의 ‘남편 지키기’는 그녀 혼자만 고군분투할 뿐, 정작 남편은 아내가 없는 얼마간의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룰루랄라 쾌재를 부르고 다닐지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계라도 탄 것처럼 신나지만 그런 티도 내지 못하고, 조용하게 소파에서 신문을 읽고 있을 남편의 마음속에는 이미 온갖 계획이 빼곡하게 차 있을 지도 모른다. 잠깐 동안의 후련한 해방감으로 씨익 썩소짓고 있을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녀의 ‘남편지키기’는 ‘F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