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ks of the Ohio, 이쯤되면 살인의 추억

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by 늘 쪽빛바다

Sung by Olivia Newton John


I asked my love to take a walk/ 난 연인에게 산책하자고 요구했어

To take a walk, just a little walk/ 잠깐만 산책하자고

Down beside where the waters flow/ 저기 강물이 흐르는 곳 옆으로

Down by the banks of the Ohio/ 저기 오하이오 강둑 옆으로



이 노래는 조영남 아저씨가 <내고향 충청도>라는 제목으로 번안해서 부른 곡으로 유명하다. “일사후퇴 때 피난 내려와”로 시작하여 어느덧 충청도에 터를 잡고 살면서 고향이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원곡은 끔찍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애초에 남자 버전에서는 변심한 여자를 죽이는 내용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올리비아 뉴턴 존 버전이 인기를 끌면서 여자가 남자를 죽이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살인자에게 굳이 남녀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지만, 여성 살인자는 왠지 더욱 치밀한 의도가 깔려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더 잔인할 수도 있으리라. 이 곡은 올리비아 버전을 기본 텍스트로 하여 여성 살인자의 심리를 따라가보려 한다. 여름도 끝나가는 마당에 뜬금없는 납량특집 쯤으로 생각하면서.


여자가 연인에게 강둑 옆으로 잠깐 산책하자고 한다. 어디 먼 곳으로 1박2일 여행가자는 것도 아니고, 잠깐 강둑이라는데, why not?




And only say that you’ll be mine/ 당신은 이제 내꺼라고 말할 수 있어

In no others’ arms entwine/ 다른 어떤 사람의 품에도 안기면 안되거든

Down beside where the waters flow/ 저기 강물이 흐르는 곳 옆으로

Down by the banks of the Ohio/ 저기 저 오하이오 강둑 옆으로



여자는 다른 여자에게 연인을 뺏길까봐 전전긍긍 했던듯 보인다. 살인자들이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시키는 흔한 변명 중 하나는 “가질 수 없을 바엔 없앤다” 이다. 화자도 그런 의도를 가졌던 것 같다.


살아서는 못 가질 남자를 죽여서라도 가지겠다는 결심을 하고, 여자는 강둑으로 유인한다. “이제 당신은 영원히 내꺼야”라고 나지막하게 말하는 부분은 섬찟 오싹하다.


이 장면에서 미국 소설가 윌리암 포크너의 단편소설 <에밀리에게 장미를>(A Rose for Emily)이 오버랩 된다. 에밀리의 완고한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이제는 나이든 하인 한 명과 에밀리만 남아있다. 은둔자의 폐쇄적인 삶을 사는 에밀리에게는 오랜 세월 체납한 세금 문제와 함께, 집 부근에서 악취가 난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젊은 시절, 에밀리는 마을에 건축 공사하러 온 젊고 잘생긴 감독관과 사랑에 빠진 사건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에밀리가 너무 못생겼으니, 공사가 끝나고 감독관도 가게 되면 버림받을거라고 수군거렸다. 공사는 끝이 났고 에밀리는 그때부터 두문불출, 은둔의 삶을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은 연애 실패로 인한 상처겠거니 하며 그녀를 불쌍하게 생각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에밀리가 죽은 후, 마을사람들은 오랫동안 닫혀있던 에밀리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침대에서 썩어 악취나는 남자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더욱이 침대 옆에는 에밀리의 긴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있었다. 죽기 전까지 에밀리는 시신 옆에서 잠을 잔 것이었다.




I held a knife against his breast/ 나는 칼로 그의 가슴을 찔렀어

As into my arms he pressed/ 그때 그가 나의 양팔을 눌렀어

He cried, “My love, don’t you murder me/ 그는 소리쳤지, “내 사랑, 날 죽이지 마”

I’m not prepared for eternity”/ 난 죽을 준비가 안됐어



화자는 무방비 상태의 연인을 칼로 찔렀고, 죽어가는 남자는 살려달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너무 끔찍한 장면이다. 아무리 여자의 한이 서렸대도 사람 목숨과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맞바꾸는 일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에밀리는 그 옛날, 감독관이 떠나게 된 즈음에 약국에서 비소를 산 일이 있었다. 약국발 소문은 마을사람들에게 퍼졌고 그들은 에밀리가 상심한 나머지 비소를 먹고 자살하려 했다고 생각했다.


가질 수 없다면 그냥 놓아버리면 될 것을, 그걸 갖겠다고 극단으로 치달은 결과, 남도 해하고 자신도 수렁에 빠진 비극적 사건이 된 것이다.




I wandered home, ‘tween twelve and one/ 어슬렁거리다 12시와 1시 사이에 집으로 왔어

I cried, “My God, what have I done?”/ “이런,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라며 울었어

I’ve killed the only man I love/ 난 내가 사랑하는 단 하나뿐인 남자를 죽였어

He would not take me for his bride/ 그는 나를 신부감으로 생각지 않았기에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죽은 연인은 가질 수도 없는 것을. 시체를 연인으로 생각하고 수십년을 껴안고 산 에밀리같은 사람을 칭하는 ‘마카브르’(macabre)라는 단어가 있다. 으스스하고 섬뜩하다는 뜻인데, 이런 류의 예술을 통칭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이왕 이런 주제를 펼쳤으니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나가면, 에밀리에 대해서는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를 의심하는 비평가도 있다. 시신이나 유골에 집착하는 이상 심리를 가진 자를 일컫는 말인데, 심하면 시체와 성행위를 하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서 ‘살인’과 ‘추억’은 양립할 수 없는 단어이다. 미제 살인사건과 범인을 쫓던 형사의 시점이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이미지의 제목이 붙여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가 나온 이후로 '살인의 추억'이라는 단어는 끔찍한 살인사건에 대한 은유가 되었으니만큼 이 노래에도 모른척 슬쩍 끼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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