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원 Jun 20. 2022

마거릿 린제이 허긴스

레이디 허긴스

마거릿 린제이 허긴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도 곧 재혼해서 외로웠던 소녀, 마거릿 린제이 머레이에게 할아버지는 가장 친한 친구였어. 은행가였던 할아버지의 취미는 천체관측이었는데, 종종 마거릿을 데리고 밤하늘을 보러 나섰어.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가면 그저 점이었던 별들은 별자리가 되어 모습을 드러냈지. 할아버지 덕분에 마거릿의 취미도 천체관측이 되었고, 천문학에도 관심이 생겨서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어.     


어느 날 마거릿은 잡지를 읽고 있었어. 과학 잡지는 아니었는데 웬 천문학자의 글이 실렸더라고. 허긴스라는 사람의 글이었는데, 요즘 천문학계에서 떠오르는 주제인 분광학을 소개하는 글이었어. 마거릿은 마음속 무언가가 일렁이는 걸 느꼈어. 허긴스에게 반했냐고? 글쎄, 그때는 아니었던 것 같아. 대단하다, 멋지다, 정도의 느낌이었겠지. 마거릿은 집안을 돌아다니며 재료를 구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직접 분광기를 만들었지. 전문가가 만든 것에 비하면 볼품없었지만, 그 분광기로 태양의 스펙트럼을 관찰했고 스펙트럼에 그어진 까만 선들(프라운호퍼 선)까지 발견했어. 그때 마거릿은 분광학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는 걸 깨달았는지도 몰라.  

   

27살이 된 마거릿은 한 천문학자와 결혼을 약속했어. 남편이 된 사람이 누구였냐면, 놀라지 마. 바로 마거릿이 잡지에서 읽은 글을 쓴 윌리엄 허긴스였어.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광학을 사랑했던 그들이 서로에게 끌린 건 당연한 일이겠지? 이 커플은 무려 24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윌리엄 허긴스는 결혼 당시 51살) 평생의 부부이자 최고의 동료가 되었어. 그리고 마거릿은 남편의 성을 따라 레이디 허긴스라 불리게 되지. 그들은 집이자 연구실이자 관측소였던 툴스 힐 천문대에서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해.     


망원경으로 별을 보면 빛나는 점을 볼 수 있지? 그런데 망원경에 프리즘 같은 분광기를 설치하면, 별빛은 쪼개져서 무지개로 펼쳐져. 이 무지개를 스펙트럼이라 부르는데, 이 안엔 별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담겨있어. 거의 사람의 지문이나 마찬가지지. 이 스펙트럼을 연구하는 게 바로 분광학이야. 허긴스 부부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이 스펙트럼을 촬영했어. 천문학자들은 사진 자료를 분석하며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됐지. 게다가 이 촬영된 스펙트럼은 밤은 물론 낮에도 볼 수 있었고 말이야.     




일부 사람들은 마거릿을 남편의 조수 정도로 여기지만, 윌리엄 허긴스는 연구에 있어 아내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고 자주 언급했고, 동등한 연구자로 여겼어. 마거릿은 뛰어난 엔지니어였어. 사진술 전문가였고, 희미한 별의 선명한 스펙트럼을 얻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연마했지. 또 보는 눈과 판단력, 참을성이 좋았고, 매우 성실했다고 해. 부부가 유일하게 쉬는 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 관측할 수 없는 날’이었다니 말 다 했지, 뭐.     



허긴스 부부는 30년간 별들의 스펙트럼을 쉼 없이 찍어냈어. 그 결과 1899년에 <대표적인 항성 스펙트럼 지도(An Atlas of Representative Stellar Spectra)>라는 논문이 출간되었지. 이 논문의 표지를 보면 알겠지만, 윌리엄 허긴스와 레이디 허긴스가 공동 저자로 명시되어 있어. 윌리엄이 1910년에 세상을 뜨자, 마거릿도 연구를 접고 휴식에 들어갔어. 마거릿은 남편의 전기를 쓸 생각이었지만,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완성하진 못했지. 윌리엄이 죽고 5년 뒤, 마거릿은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나게 돼.     


마거릿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재산과 가지고 있던 천문학 기기와 자료를 미국 웰즐리 여자 대학에 기부했어. 웰즐리 여자 대학엔 물리학과와 천문대가 있었고, 사라 휘팅이라는 젊고 열정적인 물리과 교수가 있었거든. 마거릿은 이 여성들이 가져올 변화를 믿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 바람은 이루어졌어. 웰즐리 여자 대학에서 사라 휘팅의 수업을 들은 어린 여학생들이 여성 천문학자로서 한 획을 긋기 시작했거든.   


  



마거릿 린제이 허긴스

1848년 8월 14일~1915년 3월 24일

영국의 천문학자

남편 윌리엄 허긴스와 함께 분광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리아 미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