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에 헨리 드레이퍼라는 의사이자 아마추어 천문학자가 있었어. 천체사진 촬영이 취미였던 아버지의 취미와 재능을 물려받아 베가라는 별의 스펙트럼을 최초로 촬영했지. 그의 작업실을 자주 들락거리던 어린 조카들은 삼촌 덕분에 어린 나이에 과학의 재미에 눈을 떴어. 그중에 안토니아 모리라는 소녀는 특히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어. 그래서 마리아 미첼이 교수로 있었던 바사 대학에 입학해서 물리학과 천문학, 철학 학위를 받고 졸업하게 돼. 안토니아는 졸업식에서 연설을 했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어. 그러나 드레이퍼 삼촌은 이 광경을 보지 못했어. 45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거든.
안토니아의 외숙모, 그러니까 드레이퍼 삼촌의 부인은 남편이 세상을 뜨자 하버드 대학 천문대에 재산의 일부를 기부했어. 당시 하버드 천문대장이었던 에드워드 피커링은 그 자금으로 별의 스펙트럼을 분석해서 별을 분류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헨리 드레이퍼 항성 목록>이라는 이름으로 결과를 출간했어. 안토니아는 피커링의 연구실에 들어가 하버드의 컴퓨터 중 한 명이 되었어. 안토니아가 처음으로 맡은 일은 피커링 교수가 얼마 전에 발견한 쌍성, 미자르란 별의 궤도를 계산하는 일이었지.
천문대 생활은 쉽지 않았어. 안토니아의 피나는 노력으로 덕을 보는 사람은 천문대장이었던 피커링이었거든. 물론 피커링도 출판물이나 발표장에서 안토니아의 이름을 언급을 하긴 했어. 하지만 정작 세상이 기억하는 건 안토니아가 아닌 피커링의 이름이었어. 안토니아만 이런 대접을 받았을까? 하버드의 다른 컴퓨터들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들이 소극적이었던 건지, 아니면 안토니아가 헨리 드레이퍼의 조카였기 때문에 그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안토니아는 부당함을 주장하며 피커링과 자주 부딪혔어. 외로운 투쟁이었지.
안토니아는 쌍성 연구와 더불어 별들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는 일도 맡았어. 당시에 하버드 천문대에선 애니 점프 캐넌이 고안한 방식으로 별을 분류하고 있었어. 근데 안토니아가 스펙트럼을 살펴보니까, 비슷한 흡수선을 가진 별도 어떤 건 선이 짙거나 두껍고, 어떤 건 얇고 흐릿한 거야. 예를 들어 모양이 같은 두 개의 바코드가 있는데, 하나는 선이 두껍고 진하고, 다른 하나는 선이 비교적 얇고 희미한 거지. 그렇다면 두 바코드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안토니아는 흡수선의 두께나 강도도 고려해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어. 하지만 피커링과 천문대 사람들은 단순하고 명쾌한 캐넌의 분류법을 선호했지. 안토니아는 자신의 모든 걸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을 거야. 무엇 하나 인정받지 못하는 곳에 있고 싶지 않았던 안토니아는 짐을 챙겨 천문대를 떠나고 말았어.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던 어느 날, 피커링에게서 연락이 왔어. 연구를 완성하던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넘기라고 말이야. 결국 천문대를 나온 지 2년 만에 돌아가서 4,800개의 별들의 스펙트럼을 자신의 방식으로 분류했고, 이 결과를 출판했어. 에드워드 피커링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말이야. 여성이 저자인 최초의 논문이었어('에드워드 피커링 감수’라 적혀 있긴 해).
안토니아는 다시 천문대를 떠났고 대학에서 천문학과 물리학, 화학을 가르쳤어. 논문이 나온 지 11년이 지났을 때쯤, 피커링은 덴마크의 천문학자 에즈나 헤르츠스프룽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어. 거기엔 안토니아의 분류법에 대한 칭찬이 가득했지. 안토니아가 분류한 그룹 중 하나인 c형 별들은 바로 헤르츠스프룽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적색 거성’이란 별이었거든. 하버드 대학 천문대에선 관심 갖지 않았던 그 분류법이 허튼소리가 아니었던 거야. 이후 헤르츠스프룽과 헨리 러셀이란 천문학자는 별의 절대 등급, 온도, 광도, 분광형 등의 관계를 나타내는 도표인 헤르츠스프룽-러셀도(H-R도라 불린다)를 제작하게 돼. 천문학과 학생들이 별의 진화를 배울 때 질리도록 보는 도표지.
하버드의 컴퓨터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스펙트럼을 들여다보는 관찰자였다면, 안토니아는 단순한 관찰자를 넘어선 이론가이자 해석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 안토니아의 후배인 세실리아 페인-가포슈킨의 얘기에 따르면, 안토니아는 쉴 새 없이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고 해. 그의 말을 그동안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샘솟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소개한 하버드의 여성 천문학자들과 비교하면, 안토니아는 확실히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인물이야. 그의 불평과 분노가 누군가에겐 불편했을지 몰라도, 분명 세상을 바꾼 행보 중 하나였을 거라고 생각해.
이후 안토니아는 하버드 대학에 돌아와 부교수가 되었고 쌍성 연구를 이어갔어. 1943년에 애니 점프 캐넌 상을 받기도 했지. 은퇴 후에는 환경 보호에 관심을 가지면서 전쟁 중 벌목에 반대하며 맞서 싸우기도 했지. 아, 정말 그녀는 멋진 싸움꾼이야. 안 그래?
안토니아 모리 Antonia Maury
1855년 3월 21일~1952년 1월 8일
미국의 천문학자. 최초로 분광 쌍성의 궤도를 계산했다. 자신만의 항성 분류체계를 만들었고, 현재 항성 분류법에는 그녀의 분류체계가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