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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Jul 12. 2023

5월, 과수원 풀베기

비트 수확을 마치고 이제 좀 쉬나 했더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곳의 존재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과수원이었지요. 지난달 가지치기와 가지 파쇄를 마친 뒤 퇴비와 비료까지 뿌려둔 그 감귤 과수원 말입니다. 부모님께선 ‘분명 풀이 잔뜩일 거다’고 겁을 주셨지만, 부모님도 그 정도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과수원은 어느새 곶자왈처럼 풀이 무성한 숲이 되어버렸거든요. 퇴비에 있던 영양분은 잡초가 흡수해버렸나 봅니다. 과수원 입구서부터 모시풀들이 제 허벅지만큼 자라 과수원 안으로 진입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풀을 진압하기 위해 장낫을 세 채 마련했습니다. 낫은 낫인데 골프채마냥 손잡이가 기다란 낫이지요. 하나는 일본 제품이고, 다른 하나는 2만 원이 넘는 나름 고가의 국산 제품, 마지막 하나는 단돈 5천 원짜리 국산 장낫이었습니다. 저와 부모님은 장낫 한 채씩을 들고 호기롭게 모시풀과의 전투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려오네요. 장낫은 모시풀의 모가지를 치기는커녕 머리를 빗듯이 슥슥 지나칠 뿐이었습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5천 원짜리 장낫은 그중에서도 제일 비실거렸습니다. 이럴 바에 동네 빵집에서 파는 5천 원짜리 팥빙수(얼음과 팥, 연유만 들어있는)를 먹고 기운을 낼 걸 그랬어요! 나머지 두 장낫은 그래도 사정이 나았습니다. 일제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농기계 분야에선 여전히 성능이 좋더군요. 얼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습도가 높아 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은 아버지는 진작에 컨테이너를 뒤집어 그 위에 앉아 계셨고, 어머니는 이마에서 흐른 땀이 눈에 들어가서 못하겠다며 포기를 선언했지요. 저는 졸병이라서 이렇다 할 선택지가 없습니다. 하면 하는 거고 말면 마는 것이지요. 우리는 입구의 풀을 제거하는데 만족하고 집으로 후퇴했습니다.


이틀 뒤, 비장의 무기, 예초기를 들고 다시 과수원을 찾았습니다. 휘발유와 엔진오일을 넣고 줄을 당기자 흰 연기와 함께 웨엥 거리는 소리를 내며 예초기의 칼날이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풀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눕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성치 않은 몸으로 예초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예초기는 저와 엄마가 들기에는 역부족이고, 예초를 해본 적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예초기가 닿지 않는 부분은 저와 어머니가 장낫으로 처리했는데, 저도 모르게 자꾸 예초기를 멍하니 쳐다보게 되더군요. 그때의 기분은 질투도 아니고 부러움도 아닌 허탈함이었습니다. 저리 좋은 게 있는데 굳이 장낫을 써야 할까? 그리곤 다짐했습니다. 곧 가스 예초기든, 전기 예초기든, 뭐든 사야겠다고 말이죠.


어딘가에서 어머니의 빨리 와보란 소리가 들립니다. 가보니 작은 뱀 한 마리가 꿈틀대고 있습니다. 낫에 베인 것인지, 예초기에 베인 것인지 꼬리가 잘려 있었지요. 뱀은 꿈틀대며 어딘가를 향해 기어가려 애쓰고 있었고, 근처 어딘가에선 뱀의 꼬리가 뱀의 머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듯 팔딱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뱀을 매우 싫어하는데, 신기하게도 뱀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발견한답니다(저는 엄마가 닭띠라서 그런 거라고 놀립니다). 저도 뱀을 좋아하진 않지만 작은 생물이 우리의 행동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몇 달 전, 과수원에서 발견한 꿩 새끼들이 떠올랐지요.


그날은 미리 가지치기로 잘라둔 가지들을 파쇄기(가지를 분쇄해 작은 나무칩으로 만드는 기계)에 넣어 잘게 부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가지들을 파쇄기에 넣고 있는데, 가지와 낙엽 사이에서 작은 알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신기해하며 가지들을 파쇄기에 밀어 넣는데 그 옆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그건 아주 작은 아기 새였습니다. 병아리만한 크기에 색깔은 옅은 갈색이었고, 몸통에 짙은 갈색의 줄무늬 같은 것이 있었지요. 아기 새는 엄마 새를 찾는지 열심히 울어댔지만 파쇄기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파쇄기가 이동하다가 깔려 죽을까봐 조심조심 움직이려는데, 이런! 저와 눈이 마주친 아기 새가 저를 따라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기 새는 제 속도 모르고 저와 부모님, 그리고 파쇄기 쪽으로 뒤뚱거리며 따라왔습니다. 마른 가지와 낙엽과 털색이 비슷해 잘 보이지도 않았어요. 어느새 발 밑에 놓인 새를 보고 화들짝 놀란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새를 집어 처음에 발견된 나무 아래로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 다시 아래를 보니 또 새가 제 발아래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기 새가 걸어서 이렇게 빨리 올 수가 있나? 손으로 집어 나무 아래에 내려놓으려 했더니, 세상에. 새는 한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보이는 아기 새들을 집어 대야에 넣고 보니 여덟 마리나 되더군요.


이 새의 정체는 바로 꺼병이라 부르는 꿩의 새끼였습니다. 꺼벙이가 아니라 꺼병이요(‘엄마, 꺼벙이는 만화 캐릭터라고!’). 제주엔 꿩이 많습니다. 여기저기서 꿩의 울음소리가 들리지요. 일을 하러 밭에 들어가면 수풀 사이로 숨은 꿩이 ‘꿔겅!’ 소리를 내며 하늘로 뛰쳐올라갑니다. 저 놈의 꿩 때문에 심장이 떨어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작년에 수렵장을 열지 않아 올해 꿩이 많은 거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꿩을 떠올려봐도 좋은 기억은 없지만 새끼가 뭔 죄겠습니까. 일단은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꺼병이들의 부모는 새끼를 낳았다는 것도 잊었는지 한두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꺼병이들은 잠이 들거나 울음을 멈추고 눈만 껌뻑거렸지요. 불쌍한 것들! 꺼병이들을 이대로 대야에 둔다면 천적에게 쉽게 노출돼 잡아먹힐 수도 있었지요. 그렇다고 꺼병이를 키울 수도 없고요. 결국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 대야에 담긴 꺼병이들을 파쇄기에서 멀리 떨어진 과수원 가장자리에 풀어주었답니다. 부디 살아남기를 바라면서요.


과수원에서 작업하며 다양한 생명을 마주합니다. 감귤 잎에 대롱대롱 매달린 매미의 허물과 온갖 곤충과 벌레도 볼 수 있지요. 한 번은 작은 개미에 물려 팔이 퉁퉁 붓기도 했어요. 제초제를 쓴다면 잡초가 없으니 동물이나 벌레에 시달릴 일도 없을 겁니다. 연로하신 부모님도 훨씬 편하실 거고요. 하지만 아버지는 과수원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으시대요. 저도 그래요.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지요. 덕분에 30년 가까이 무농약 감귤을 먹고 자랄 수 있었으니까요. 감귤이 익는 동안 이곳이 누군가의 터전으로 쓰인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이겠습니까. 그들과의 조우가 항상 반가운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죠.


어쨌든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예초 작업을 마쳤습니다. 아마 다음 달이 되면 또 허리만큼 풀이 잔뜩 자라 있을 겁니다(작물이 이렇게 자라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예초기를 한 대 더 구입해야겠어요. 벌써부터 풀이 두렵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지요. 걱정한다고 풀이 천천히 자라는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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