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비 정식
9월 초, 제주는 비가 왔다가 그치기를 반복했습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콜라비 모종을 심을 수가 없었지요. 비가 오면 땅이 질어서 어떤 작업도 할 수 없거든요. 모종을 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꽤나 많습니다. 토양 살충제와 비료를 뿌리고, 트랙터로 밭을 갈고, 고랑도 내야 해요. 5평짜리 텃밭이라면 금방 끝내겠지만, 이 농촌에서 밭 하나는 최소 500평이 넘기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듭니다. 물론 이 일을 농부가 모두 직접 하는 것은 아닙니다. 농업용 드론이나 약 뿌리는 기계가 설치된 트럭을 사용하는 전문가를 섭외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들도 농번기엔 모시기가 쉽지 않아서 차례가 될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요. 차례가 되었는데 비가 오면 어떡하냐고요? 별 수 있나요. 그래서 9월 초엔 아버지의 얼굴 표정이 썩 밝지 못했습니다.
비가 며칠 오지 않아 땅이 마른 사이, 우리 밭에 트럭과 트랙터가 차례로 나타났습니다. 마침 두 전문가가 오늘 시간이 났던 것이죠. 며칠 뒤 비 예보가 있어서 서둘러 콜라비를 심었으면 했는데, 이게 웬걸! 콜라비 심는 인부들까지 섭외가 된 것입니다. 오늘 예정되어 있던 브로콜리 심기가 취소됐다나요? 홀가분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 세 시쯤 되자, 승합차 한 대가 나타났습니다. 차 문이 열리더니 열다섯 명 정도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더군요. 그들은 미리 밭 옆에 갖다 둔 모종판을 들고 밭으로 가더니 그 넓은 밭을 빠른 속도로 모종으로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와 저도 쉬지 않고 모종판을 옮겼는데, 나중엔 갖다 놓는 족족 모종판이 사라져서 마음이 급해졌어요.
마지막 모종판을 전달하고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인부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태국에서 온 인부들은 생각보다 메로나를 좋아하지 않더라고요(중국분들은 메로나를 좋아했어요!). 저도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물고 색색깔의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수다를 떨며 모종을 심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고, 또 언제 집으로 돌아갈까요. 밥은 잘 먹고 있을까요? 부당한 일을 당하진 않았을까요?
어머니와 제가 모종 심는 기기로 직접 심었다면 이틀은 걸렸을 일인데, 작업은 두 시간 만에 끝났습니다. 그들은 옷을 털고 웃고 떠들며 다시 승합차로 돌아갔습니다. 아는 태국어가 인사와 감사합니다 밖에 없어서 머리를 숙이며 ‘코쿤카’라 인사했더니 웃더군요. 반갑거나 신기한 것을 보았을 때의 웃음은 아니었던 걸 보니 발음을 영 잘하진 못했나 봅니다.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 들었습니다. 마땅히 대가를 주고 부탁한 일이지만, 그 작업이 얼마나 힘든 지 알고 있으니까요.
콜라비 주인의 작업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스프링클러 설치가 남아있지요. 이 일은 정말로 사람을 열받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기껏 무거운 호스를 끌어왔더니 그 옆 줄로 옮겨야 한다고 하질 않나(그 앞에 호스들도 모두 옮겨야 된다!) 스프링클러 짝이 안 맞질 않나, 호스에서 삐죽하고 물이 새질 않나… 밭은 또 어찌나 큰지 앞에서 끝까지 걸어가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바닥이 울퉁불퉁하니 발과 종아리도 아프고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여기저기서 나오는 물을 맞는 통에 옷은 이미 다 젖고 얼굴은 흙탕물 투성이가 되었습니다(일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얼굴과 옷이 더럽다던데!).
여기까지 마쳤다면, 끝났다고 할 순 없지만 대부분의 육체노동은 끝난 셈입니다. 그래도 이번엔 태국에서 온 인부님들의 덕분으로 수월하게 끝냈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추석 연휴에도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며 얼굴에 흐르는 것이 농업용수인지 눈물인지 분간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농부들은 아이를 키우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지요. 그 사이 양배추와 콜라비는 놀랄만한 속도로 자라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