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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Aug 28. 2024

 '이것'의 기억을 잃어가는 세대?

여름이라 그런지 유난히 SNS에는 은하수 사진이 자주 보는 것 같아요. 나가서 하늘을 촬영하기 좋은 계절이라서 그런 거냐고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름철 저녁엔 은하수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형태가 되기 때문이랍니다.


Malcolm Park, NASA APOD(2016. 07. 02., https://apod.nasa.gov/apod/ap160702.html)


천문학을 전공한 저도 사실 아직 맨눈으로 은하수를 본 적은 없습니다. 몇 년 전에 제주도 곶자왈에서 열린 반딧불이 축제에 참여했는데, 그 어떤 불빛도 허용하지 않았던 숲에서 고개를 들자, 하늘에 희미한 구름 또는 연기 같은 무언가가 보이긴 하더라고요. 하지만 사진에서 보던 모습은 아니었어요. 한 지인은 몇 년 전에 몽골에서 은하수를 봤다고 하던데, 올해 몽골에 방문한 또 다른 지인은 이제 몽골도 상상한 것만큼 은하수를 잘 볼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하더군요. 발리를 자주 다녀온 다른 지인은 전기나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는 발리의 명절 녜피(Nyepi) 날에 만난 은하수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와 태양, 그러니까 태양계 바깥에는 수많은 별과 또 그 별을 도는 행성들, 가스와 먼지가 여기저기 분포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주에 '균일하게' 퍼져있는 것은 아니에요. 우주의 재료들 역시 한 영역 안에 모여 있습니다. 그걸 은하라고 합니다. 별을 하나하나의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은하는 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국가라고 볼 수 있죠. 우리도 역시 어느 한 은하 안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은하의 이름은 '우리은하'예요. 참 평범한 이름이죠? 영어로도 Our Galaxy라고 부릅니다. Milky Way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우리은하는 위에서 바라보면 소용돌이처럼 생겼어요. 은하의 중심에서 나선 모양으로 여러 개의 팔이 뻗어나가죠. 그 나선팔 안에 별이 있고, 별을 만든 재료와 별이 만들 재료들이 있습니다. 우리 지구도 나선팔 중 하나에 있습니다. 물론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도요. 우리은하의 지름은 무려 10만 광년, 그러니까 끝에서 끝까지 가는 데 빛의 속도로 10만 년이나 걸립니다. 하지만 우리은하는 그다지 대단한 존재는 아니에요. 태양 역시 평범한 은하의 변두리에 자리 잡은 평범한 별일 뿐이죠.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가치 없는 존재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여름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는 지구에서 보이는 우리은하의 나머지 모습입니다. 또 이때 보이는 은하수는 우리은하에서 가장 밝은 중심 부분이기 때문에 더 멋진 모습을 포착할 수 있죠. 지평선 근처에 뜨는 궁수자리가 있는 곳을 향해 앞으로 쭈욱 날아간다면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에 도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 블랙홀을 궁수자리 A*라고 부르는 겁니다. 궁수자리 방향에 있어서요.




제주에선 1100고지나 성이시돌목장 등이 은하수 촬영 명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전엔 밤이 되면 쉽게 은하수를 볼 수 있었다지만, 이젠 인적이 드문 첩첩산중으로 기어들어 가야 하죠. 그건 밤하늘이 너무 밝아졌기 때문입니다. 건물 창문마다 새어 나오는 불빛, 점선처럼 이어진 가로등, 지평선을 밝히는 오징어잡이 배의 전등 등 우리 생활을 위해 밝힌 불빛은 별과 은하수를 보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과도한 빛이 하늘을 밝게 만들고 생태를 교란하는 것을 빛 공해(광공해, 광해)라고 합니다. 1994년, 미국 LA에서 대규모 정전이 일어났을 때의 일입니다. 온 세상이 캄캄해지자, 미국 시민들은 하늘에서 무언가를 보고 911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고 해요. 바로 은하수였어요. 이제껏 그들은 은하수를 본 적이 없었던 거죠. 우스운 일이지만, 우리 주변에도 은하수를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인류에겐 은하수에 대한 기억이 DNA에서 사라지고 있어요. 이 사건 이후로 지구의 날이나 환경의 날처럼 특별한 날마다 약 5분간 소등하는 캠페인이 시작됐다고 해요.


얼마 전에 핸드폰 카메라로 은하수를 촬영해 보고 싶어서 가까운 곳을 둘러봤지만 깨달은 건 대한민국에 캄캄한 곳이 거의 없다는 거였어요. 물론 발리처럼 모든 불을 다 끌 순 없겠죠. 하지만 '때로는 빛이 많을 수록 볼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아는 것과 모르고 있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요.



"조망 효과가 일어나려면 경외감이 필요해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경험은 산이나 숲에서 숨 막히는 풍경을 마주하는 경험과 비슷하죠. 하지만 도시에서는 어떨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도시에는 우리 자신보다 거대한 무언가가 별로 없으니까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뿐이네요. 어둠 속의 빛, 별이 빛나는 하늘을요."

 - 마욜린 판 헤임스트라,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우주에서 일상을 바라본다면)



* 마욜린 판 헤임스트라,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우주에서 일상을 바라본다면), 돌베개(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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