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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Aug 27. 2024

8월, 파종하다 생긴 일

응급실에 가다

광복절 부근엔 슬슬 다음 작물 농사를 준비합니다. 제주는 겨울이 따뜻하기 때문에 월동 작물을 많이 재배하는데, 제가 사는 동네에선 주로 비트나 양배추, 콜라비를 많이 심어요. 엄마와 저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콜라비 농사를 준비했습니다. 콜라비 씨와 상토, 포트판, 그리고 포트판에 씨를 주입하는 기계가 필요해요. 아, 쭈그려 앉아서 일하면 힘드니까 의자도 하나 필요하고요. 이 준비물로 콜라비 모종을 만듭니다.


분명 작년에 한 번 해봤는데, 1년이 지났다고 벌써 가물가물 하더라고요. 먼저 포트판에다가 상토를 채웁니다. 포트판에 상토를 얹고 손이나 자로 쓱쓱 밀면 포트 구멍마다 상토가 채워지죠. 준비한 모든 포트판에 상토를 채워 차곡차곡 쌓아둬요. 상토를 다 채웠으면, 체중을 이용해 포트판을 꾹 눌러줍니다. 그럼 포트판이 살짝 포개지면서 씨가 들어갈 공간이 만들어져요. 이제 의자와 파종 기계를 가져옵니다. 파종기를 포트 위에 얹은 다음, 은단보다 작은 씨를 파종기에 넣고 살짝 흔들어 200개의 씨앗을 각각의 구멍에 집어넣은 다음, 버튼을 누르면 씨앗 하나하나가 포트 속으로 쏙 들어간답니다. 이 위에 다시 상토를 살짝 채워 포트판을 그늘 아래에 쭈욱 늘어놓으면 돼요. 하루 이틀 물을 주면 새싹이 상토를 뚫고 올라온답니다. 얼마나 기특한지요!


반나절 내내 모종판을 만들며 온몸은 땀으로 절고, 바지와 신발은 흙먼지에 뒤덮였습니다. 손톱엔 흙이 들어가 까매지고 손바닥도 거칠었죠. 덥고 지치고, 배는 고프지만 입맛은 없어서 집에 가면 시원한 콩국물이나 마시기로 했죠. 집에 가기 전, 엄마가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는 사이에, 저는 창고에서 사료를 먹고 있는 고양이를 쳐다보며 고양이는 알아듣지도 못할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깥에서 엄마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어요.


"주원아, 빨리 와. 빨리!"


또 엄마가 질색하는 뱀이라도 나왔나 싶어 바깥으로 나와봤더니, 엄마는 주저앉아 왼쪽 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문을 닫고 나오면서 넘어졌는데, 그만 깨진 화분 위로 넘어져 손목을 깊게 베인 겁니다. 엄마는 패닉에 빠져 있었어요. 베인 곳에서 하얀 힘줄 같은 게 끊어진 게 보였다고 말했어요. 저는 얼른 트럭에 있던 수건을 꺼내 엄마의 손목을 둘둘 감고, 엄마에게 손목을 꽉 잡고 있으라고 얘기했어요. 흙먼지로 더러워진 엄마의 남방에 핏자국이 더해져 있었습니다. 광복절이라 근처 병원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고, 결국 119에 전화를 걸어 앰뷸런스를 보내달라고 했어요.


이런 시골에 살면, 병원에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앰뷸런스도 15분을 기다려야 했죠.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를 굴리는 사이에 차 한 대가 가까이 왔습니다. 병선 이모였어요!(나이 먹은 것 같다고 싫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삼춘이라 부르지 않아요) 언제나 웃는 얼굴을 하는 병선 이모는 우리의 굳은 얼굴을 보고 바로 차에서 내리셨어요. 그리고 앰뷸런스가 올 때까지 함께 계셔주셨죠. 남은 모종 작업은 내가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치료에 전념하라는 말도 해주시고요.


앰뷸런스에 엄마를 태우고, 저는 직접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집과 병원까지는 차로 1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광복절이기도 하고, 파업 중이라 응급실엔 의료진이 많지 않았어요. 우리가 떨어뜨린 땀냄새와 흙먼지를 모른 채하며, 기다림 끝에 만난 의사 선생님에게서 들은 말은, 손처럼 미세한 부분은 응급실에서 처치해 줄 수 없다는 거였어요. 이틀 뒤에 입원해서 정형외과 선생님께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요. 결국 엄마는 수술을 위한 간단한 검사를 하고, 항생제를 맞고, 손목엔 부목을 댄 체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일을 마치면 콩국을 먹기로 했던 모녀는 저녁 9시에 차 안에서 햄버거를 입 안으로 욱여넣고, 다른 한 명은 그마저도 할 수가 없어(입맛도 싹 사라지셨다며) 그나마 멀쩡한 왼손으로 감자튀김만을 먹는 하루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다친 팔도 걱정이지만 야매 농부도 농부라고, 아직 작업하지 못한 모종판이 있어 다음날 엄마와 같이 일을 하러 나갔어요. 물론 엄마는 일은커녕 운전도 할 수 없기에 제가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막상 비닐하우스에 가보니, 이웃분들이 우리보다 먼저 일터에 나와 계셨어요. 엄마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일을 도와주러 오신 거였죠! 제가 모종판을 만들고 있으니 우리가 하면 된다고, 너는 집에 가서 네 일 보라고 하면서 제 일을 다 뺏어(?) 가버리셨어요. 어제 엄마와 제가 둘이서 할 땐 그렇게도 오래 걸리더니, 네 명이 함께 일하니까 정말 순식간에 일이 끝나더군요. 그럼 점심이라도 사겠다는 엄마의 말에 두 분은 손사래를 치며 가버리셨고, 한 분은 오히려 밥값을 이미 계산하셔서 그냥 밥 얻어먹은 사람이 되고 말았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아직까지 이웃들은 매일 비닐하우스에 들러서, 제가 물을 주지 못하는 날엔 저 대신 물을 주고 계세요. 엄마가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할까 봐 한 이모는 바다에서 직접 딴 배말(삿갓 조개)로 죽을 끓여 집으로 찾아오시기도 하고, 또 다른 이모는 반찬을 해다 주시기도 했답니다. 아, 제주의 수눌음 정신이구나 싶더군요. 이렇게 우리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많았다니. 친척이라곤 단 한 명도 없는 이 제주도에서, 드디어 우리에게도 든든한 우리 편이 생긴 기분이었답니다.


응급실을 다녀오고 며칠 뒤에 엄마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의사가 귀한 시기에 친절하고 세심한 정형외과 선생님을 만난 것도 복이죠. 손의 구조는 복잡하고, 신경과 인대, 힘줄 등은 회복하는데 4~5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려 운전과 집안일 대부분은 제 차지입니다. 모종에 물을 주는 것도 제 일이고요. 제가 일정이 있을 땐 이웃분들이 도와주신답니다. 이렇게 십시일반으로 키운 콜라비는 무사히 싹을 틔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자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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