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자리
제주에 있다 보니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별이나 별자리에 대해 물어보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사실 수도권이나 제주나, 우리나라 어디에 있든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땅 덩어리가 그리 크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조금 차이가 있다면 제주도는 위도가 낮기 때문에(적도와 가깝기 때문에) 서울이었다면 땅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별자리들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노인성’이에요. 노인성의 세계 공식 이름은 카노푸스인데, 용골자리라고 하는 별자리의 가장 밝은 별이에요. 이론적으론 수도권에서 이 별을 볼 수 있긴 하지만, 산이나 건물에 가리는 경우가 많아 제주도 서귀포에서 볼 수 있는 별로 유명하죠. 하지만 서귀포에서도 지평선 근처에서 뜨고, 날씨가 가장 변화무쌍한 겨울철에 뜨기 때문에 저도 아직도 보지 못했어요! 노인성을 보러 갔던 이야기는 다음에 할게요. 하지만 저는 제주로 돌아와서 노인성보다도 이 별자리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말았어요. 바로 전갈자리입니다.
전갈자리는 여름 밤하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갈자리의 가장 밝은 별 ‘안타레스’ 앞으로 집게발 역할을 하는 세 별이 놓여있고, 뒤로는 에스자 모양의 꼬리가 뻗어있죠. 그야말로 전갈이에요. 어느 태평양 섬에선 낚싯바늘자리라고 부르기도 했다지만, 전갈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전갈자리라 불렀을 겁니다. 하지만 이 별자리는, 특히 수도권에선 땅에 가깝게 붙어있어요. 꼬리가 땅에 끌릴 정도죠. 그래서 조상들은 전갈자리를 보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란 전래동화를 떠올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갈자리 꼬리 끝의 두 별(샤울라, 레사쓰)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에 매달린 오누이라고 상상하면서요. 하지만 그건 분명 제주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제주에선, 전갈자리가 훨씬 높이 떠있거든요. 그래서 동아줄을 잡은 오누이라기보다 번지줄에 매달린 오누이처럼 보이죠.
별이나 별자리가 지평선 부근에 뜨면 지형이나 건물에 가리기도 하지만, 빛 공해의 피해를 받기도 합니다. 밝은 하늘 때문에 별이 잘 보이지 않아요. 전에 일하던 수도권의 한 천문과학관에선 1등성인 안타레스만 겨우 보일 정도였어요. 하지만 제주에선 꽤 높이 뜨기 때문에 빛 공해의 피해를 덜 받게 돼요(또 제가 사는 지역이 인공 불빛이 적은 시골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전갈의 완벽한 형태를 (거의) 모두 볼 수 있답니다! 기원전 몇 천년 전의 사람들과 2024년의 저는 같은 별을 보며 감탄하고 또 똑같이 전갈을 떠올리고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해요. 이토록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니. 미래의 사람들도 그러할까요?
전갈자리의 안타레스는 어두운 밤일 수록 붉게 빛납니다. 안타레스란 이름은 ‘안티’와 ‘아레스’(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으로 화성을 대표한다)의 합성어로 ’ 화성의 라이벌‘이란 뜻이에요. 화성만큼이나 붉은빛을 띠는 별이라는 뜻이죠. 보통 별들은 망원경으로 봐야 알록달록한 색깔을 확인할 수 있지만, 안타레스는 맨눈으로도 충분히 붉은 빛깔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어때요, 이쯤 되니 제주에서 전갈자리를 직접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전갈자리를 볼 때 가장 좋은 시간은 여름철 저녁입니다. 7월에서 9월까지 저녁 8시~10시 사이에 남쪽 하늘을 보면 찾을 수 있죠(계절에 따라 더 늦은 시간에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저는 요즘 제주 어딘가에서 전갈자리 모습에 연신 감탄하며 운동장을 달립니다. 이 여름을 제주에서 보내고 계신다면, 꼭 한 번 밤하늘을 올려다보세요. 전갈자리는 분명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자리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