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나의 학창 시절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먼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나에게 생긴 변화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할 즈음부터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난데없이 그런 결심을 한 게 아니라 나랑 2살 터울의 오빠가 중학교에 간 뒤 받아오는 성적을 보고는 오빠는 공부로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고, 이런 가정환경 속에서 우리 집을 일으킬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일념으로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공부에는 나름의 소질이 있어서 따로 평소에 학원을 다니지 않았어도 초등학교 때부터 뒤로 넘기는 긴 문제집 하나만 풀고 가면 평균 90점은 항상 넘었었다.
그래서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나도 이제 중학생이니 학원에 보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고 다행히 그즈음 우리 집 형편이 괜찮았는지 학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게 내 착각이었다는 것은 [가난] 학원비 연체를 보면 알 수 있다.
어쨌든 난생처음 학원에 가게 된 나는 반 배치고사를 치게 된다. 당시 사회과목 문제 중에 일정 기간 동안 평소보다 물건을 싸게 파는 행사의 명칭이었나? 문제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답이 바겐세일인 문제가 있었는데, 당시 학원에 다니던 학생들 중에 나만 유일하게 그 문제를 맞혔었다.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당시 담임 선생님이던 사회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나를 부르길래 배치고사 결과를 설명해 주시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나만 그 문제를 맞혀서 혹시 친구들이 답을 가르쳐 준 것 아니냐는, 컨닝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그 문제는 내가 학원에 오기 며칠 전에 풀었던 단원 테스트 문제였다. 나는 첫날에 교실에 앉아 다른 친구들이 다른 과목 수업을 받는 동안 그 문제를 풀었던 거였는데, 며칠 전에 아무도 못 맞춘 정답을 내가 맞혔으니 선생님이 의심을 한 것이었다.
절대 그런 적이 없는데 억울했지만, 앞으로 실력으로 증명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선생님께 억울함만 어필하고 넘어갔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무슨 실력으로 증명하고 자시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안한걸 안 했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으니 컨닝 안 했다고 말한 게 전부였다. 그 선생님이 좀 싫어질 뻔했지만, 지내보니 괜찮으신 분이라 그 뒤로는 잘 지냈다.
중학교에 진학한 나는, 첫 중간고사를 잘 보고 싶은 마음이 엄청 컸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이왕이면 잘하고 싶었다. 그동안 딱히 공부를 못하지도 않았으니 열심히 하면 좋을 결과가 있을 거라 믿고 열심히 했다.
결과는 첫 중간고사 전교 4등이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이 새로운 궤도에 올라간 것 같다. 전교 4등을 하고 나서부터는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출석부에서 내 이름을 찾아서 꼭 한 번씩 불러보고는 하셨다. 마치 '네가 그 전교 4등이구나?' 하는 뉘앙스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부 밖에 없었는데, 결과가 좋게 나와주니 더욱 열심히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새벽 3시까지 공부를 하고 시험기간에는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했다. 엄마는 건강을 염려해서 오히려 일찍 자라고 잔소리를 할 정도였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생긴 다른 일들은 이제부터 하나씩 또 소개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