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시절에 있었던 기억나는 일들은 대략 이정도이다. 하나의 에피소드로 빼기 애매하거나 가난, 추억 둘 중에 한 카테고리에 넣기 애매했던 에피소드들을 모아서 소개하고 어린시절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명절에 사촌들이랑 같이 놀이터에 가서 놀다가 그네를 타게 되었는데, 뭐 어떻게 하다보니 그네가 공중에 높게 떴을 때 땅으로 떨어지면서 360도 회전을 한 적이 있다. 착치를 멋있게 한게 아니라 그냥 굴러 떨어졌다.
살면서 몸에 가장 큰 충격이 가해진 때가 아마 그 때가 아닌가 싶은데, 떨어지고 나서 거의 5분 동안 입밖으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너무 놀래서 그랬던건지는 몰라도 소리를 내려고 해도 바람빠지는 쇳소리만 나오고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5분 정도 지나니 목소리는 다시 나오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다쳤다고 얘기를 하면 부모님이 걱정하시니까 이 사실을 부모님한테는 알리지 않기로 오빠와 합의를 하고 알리지 않았었다. 문제는 당시 다니던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할 때마다 명치에 통증이 느껴졌다. 특히 제자리에서 뛰는 동작을 할 때 통증이 가장 심했다. 양옆으로 움직이는 건 괜찮았지만 위아래로 충격이 가해지면 치명적이었다.
처음에는 큰 병이 아닐까 덜컥 겁이나서 더더욱 말을 못했고, 이 명치의 통증은 약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차츰 가라앉았다. 아마 지금 돌이켜보건데 갈비뼈에 금이 가지 않았을까 싶다. 이 휴유증 때문인지 아직도 어쩌다가 한번씩 순간적으로 상체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빈도가 거의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라서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실제로 건강검진을 하거나 X-Ray를 찍어봐도 별다른 이상은 없으니 그냥 그 사고의 후유증인 것 같다.
내가 어릴때는 리틀캘리포니아라는 식당이 있었다. 당시에는 나에게 생소했던 음식인 캘리포니아 롤을 파는 식당이었는데, 이 날은 어쩐지 도서관을 갔다가 엄마랑 나 둘이서만 이 식당에 가게 되었다.
진짜로 배가 안고팠던 건지 돈이 없어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배가 안고프다고해서 캘리포니아롤 하나를 시켰다. 하나를 시키면 김밥처럼 1줄이 나와서 총 10개가 나왔다.
처음에 하나를 먹었는데 생전 처음먹어보는 맛있는 맛이었다. 그동안 김밥은 먹어봤어도, 캘리포니아 롤은 김밥이랑은 다른 새로운 맛이었다. 소스와 어우러지는 재료들, 밥까지. 맛있어서 정신 놓고 먹고 있으니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 느껴졌다.
근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엄마의 표정이 마냥 흐뭇한게 아니라 뭔지 모를 근심과 걱정이 보였다. 반쯤 먹고 나서 엄마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고 눈치를 살펴봐도 무슨 심각한 생각을 하는지 엄마는 내가 눈치보는지도 모르고 굳은 얼굴로 앉아있었다. (우리 엄마는 나에 비하면 눈치가 매우 없는편이다...ㅎ)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은 생각에 10개 중에 남아있던 롤 2개를 배부르다며 엄마에게 먹으라고 했고 엄마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더니 평소같으면 괜찮다고 나 먹으라고 했을텐데, 그 날은 알겠다며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2개를 엄마가 먹었다.
후에 그 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엄마는 이 날 일 자체를 기억을 못하신다. 그래서 영원히 미궁속으로 빠져버린 그날의 미스테리이다.
나는 겨루기 선수 제의도 받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육상선수이기도 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1년마다 한번씩 체력장 측정이 있었고 나는 항상 남자기준으로 해도, 여자기준으로 해도 1등급이 나오는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5학년 때는 그 중에서도 오래달리기에 두각을 보여 학교 대표 선수로 박탈이 되었다.
약 2주?한달? 정도의 훈련 기간을 거쳐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는 9시까지 등교하면 되는데, 육상 준비하는 친구들은 8시까지 등교를 해서 각자 한시간씩 훈련을 하고 교실로 들어가곤 했다. 나는 오래달리기 선수였기 때문에, 내가 했던 훈련은 타이어에 끈을 묶고 그 끈을 내 허리에 두르고 달리는 훈련이었다. 타이어의 무게는 2kg정도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어서 하기 싫었을 수도 있는데, 군말 없이 열심히 했던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내 승부근성은 알아줘야 한다. 1시간 동안 운동장을 뛰고 나면 체육선생님이 빵과 이온음료를 나눠주셨다.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아쉽게도 나갔던 대회에서는 800m달리기 예선전에서 탈락했지만, 난생 처음 스파이크라는 찡이 박힌 신발을 신고 트랙을 달려보기도 하고, 나로서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나의 어린시절은 이렇게 여러가지 추억으로 가득차있다. 간혹 가난해서 서러운 적도 있었지만 크면서 겪는 다른 일들에 비하면 일도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어린시절을 지나, 학창시절 얘기를 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