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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토끼 Jan 16. 2018

[엄마로 살기] 02 보이지 않는 것

2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출산 후 생긴 치질을 수술했다. 그런데 퇴원하기 전날 밤부터 이유 없이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40도를 가볍게 찍는가 싶더니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지속되었다. 뇌수막염이 의심된다고 했다. 종합병원으로 옮겨 각종 검사를 했으나, 수술 후 염증도 뇌척수 염증도 아니었다. 다만 백혈구와 혈소판 수치가 낮다고 했다. 그러다 서서히 열이 내렸고, 나는 퇴원했다. 10일 후 밝혀진 종합검사 결과는 허무했다. 그토록 아팠던 이유는 '원인 불명'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내 몸과 마음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형태가 없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이유도 몰랐다. 사랑을 경험하고, 가슴 뛰는 일을 발견하고, 살아갈 의지를 느끼는 일들. 삶을 움직이는 정말 중요한 것들은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 중에서도 결정적으로 내 삶을 바꾼 것은, 내 안에 첫 생명이 깃든 일이었다. 그때까지 자궁이란 몸 속 깊숙이 존재하리라 생각만 해왔던 기관이었다. 생명을 눈으로 볼 수는 없었다. 조금씩 달라지는 몸의 변화들로 그 생명의 자람을 짐작할 뿐이었다. 규칙적인 생리가 사라졌고,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다. 점점 기름 냄새와 매운 내가 역하게 느껴지더니 입덧이 시작되었다. 배가 불러오고 튼살이 생겼다. 밑이 주저앉는 듯 고통스러운 막달을 보내다 내 몸을 찢고 아이는 세상에 나왔다. 그때 내 치질도 함께 밖으로 출산해버렸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 내 몸에 많은 흔적을 남긴 셈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일이 더 명확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가 온 몸이 빨개지도록 우는 이유를 매번 정확히 짚어낼  없었다. 배고픈가 싶어 젖을 물렸다가 기저귀가 축축한지 확인해보고, 그것도 아니면 속이 불편한가 싶어 트림을 시켜볼 뿐이었다. 뭔가가 불편해서 그러겠지, 업고 달랠 수밖에 없는 날들이 지났다.


말을 하면서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배워가기는 했다. 하지만 아이가 금세 기분이 좋아지거나 토라지는 것, 혼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나게 노는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친구에게 장난감을 양보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친구를 초대해서 같이 놀고 싶다 말하는 것도, 엄마랑 떨어지면 죽을 듯이 울다가도 막상 떨어져서 잘 지내는 것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중 가장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항상 감사한 일이 있다. 아이는 서투른 엄마 노릇에 힘겨워하는 나를 언제나 사랑해준다. 그냥 엄마라서 좋다고 한다. 예쁘고 아름답고 귀엽고 친절하다며, 자기가 아는 좋은 수식어는 다 갖다 붙인다. 나도 그렇다. 그냥 내 아이라서 좋다. 세상 어느 누구도 얼굴과 성격을 알기 전부터 사랑한 사람은 없었는데, 이 아이가 그런 존재다.


이 사랑은 보이지도 않고 원인도 모른다. 그러다 내 삶을 강하게 이끈다. 그 사랑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가줄 것 인지 설렌다. 나를 자라게 해 줄 것임을 확신한다. 7년 전 아이가 내게 찾아왔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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