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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겨움 Jul 12. 2020

날 항상 목마르게 했던 사람

비트박스까지 시켜야만 했었니? 인마?



노래를 주제로  글입니다.
 글은 심규선씨의 ‘담담하게노래를 들으면 생각하는 옛날 사람을 생각하며  글입니다.

가급적  노래를 들으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헤어지자. 우리는 정말 잘 안 맞는 것 같아.”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그와 내가 도대체 어디가 맞지 않는다는 거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롯이 다 맞춘 나였다. 태어나서 처음 만난 연상의 오빠의 말이라, 그가 요구하는 것들이 다 옳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많이 좋아했다는 게 문제였다.

대학생 땐 염색을 한 달에 한 번씩 했다. 머리카락을 샛노란 색으로 바뀌었고, 카키색을 입혔다가 빨간색을 입혔다가 하면서 용돈의 대부분을 미용실에 가서 탕진했다. “검정 머리가 예쁜 것 같아.” 오빠야의 한 마디에 새까만 색으로 바꿨다. 내가 사랑했던 파란색 컬러렌즈도 그의 요구로 다 버렸다. “(부산 사투리 억양으로) 겨움아, 넌 남자 앞에서 너무 많이 웃는다. 그러지 마라.” “니는 침묵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르재. 침묵과 관련된 책 좀 읽어라.” 나는 점점 조용한 사람이 되어갔다. 다채로웠던 내 색들이 하나씩 지워져 흑백으로 변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내 외모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했다. 특히 내 입술이 너무 얇다며, ‘비트박스’를 자신에게 배우라고 했다. 비트박스를 하면 입술이 두꺼워진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쳐 내게 비트박스를 전수했다. ‘움취끼움취~’ 그의 가이드에 따라 정말 열심히 비트박스를 했건만, 내 입술은 1도 두꺼워지지 않았다. 그뿐이던가, 내 손목과 발목이 너무 얇다고 특훈처럼 기숙사 건물 앞에서 배드민턴 운동도 했었다. 운동을 해야 손목과 발목이 두꺼워질 수 있다면서 배드민턴 채를 마구 휘두르면 난 공을 주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운동을 마치고 방에 와서 과제를 하면 손목이 덜덜~ 떨리는 걸 참아야 했다.

6개월 넘게 만나는 기간 동안 난 비트박스도 제법 할 줄 알게 되었고, 배드민턴 스매싱도 어느 정도 받아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는 헤어지자고 했다.

내 손에 잡히지 않는 그가 너무나 목말랐다.  “니는 언제 어른이 돼서 나랑 대화할래.”라고 말하면 “노력할게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 이제와 생각해 보면 참 보잘것없는, 자뻑에 빠진 남자였는데 난 그가 왜 그렇게 대단해 보였던 것일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지 않는 사람은 만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준 사랑. 나를 못났다고 느끼게 하는 사랑은 옳지 않다는 걸 배우게 해 준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연애 역사에서 그와 만났던 기간은 가장 어두운 ‘침체기’였다. 문화유산이 찬란하게 피려다가 모든 게 봉쇄당하고 철저하게 쇠퇴했던 시기.

그가 헤어지자고 말했던 날은 화이트데이였다. 그런 기념일은 원래 챙기지 않아서 한 번도 부러워한 적이 없었는데 길거리에 여자들이 꽃다발과 사탕바구니를 들고 가고 있었다. 화이트데이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별을 선물해줬다는 게 슬퍼서 계속 눈물만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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