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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겨움 Dec 16. 2020

이직 후, 새로운 회사에서의 마음 관찰기록

태어나는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태어난 뒤에도 우리는 몇 번이고 태어나는 마음으로 산다. 제 몸집만 한 가방을 메고 커다란 운동장에 처음 들어설 때,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갈 때,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사랑이 올 때, 사랑이 떠날 때, 크고 작은 도전과 모험 앞에서 우리는 선택을 한다. (중략)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상처도 후회도 없다. 그러나 성장도 없다. 성장은 언제나 균열과 틈, 변수와 모험들 사이에서 생겨난다. 간극을 메우고 틈을 좁히고 서로 어긋난 것들 속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에야 비로소 우리는 조금 자랄 수 있다. 온실 속 화초 같은 사람이라는 말에 모욕감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본문 중 발췌-



회사를 이직하고 출근한 지 보름이 지났다.


전 회사에서 퇴직을 하고 이틀 가량 쉬었다. 그때 지배했던 마음은 ‘두려움’이었다. 마라톤 선수가 가장 두려운 순간이 출발선에 서기 직전이라고 했던가? 도망치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과 그랬을 때 겪을 쪽팔림이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7년 넘게 일했던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시작한다는 건 분명 설레는 일이었지만 ‘잘 해내지 못할까 봐’ ‘실패할까 봐’ 몹시도 두려웠다. 창밖의 떨리는 나뭇가지처럼 후들거렸다.


출근을 했던 날에는 어떻게 하루가 지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긴장과 즐거움이 공존했지만, 모든 게 낯설었던 시간 속에서 긴장감이 더 팽배했다. 내내 웃으면서도 마음은 꽁꽁 얼어서 ‘혹여나 뭐라고 오해받거나, 실수할까 봐’ 굳어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명상을 하면서 울컥하면서 눈물까지 핑 돌았는데,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자신없고 나를 믿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출근한 지 보름이 지났다. 하루하루 일희일비하면서 보내고 있다. 어느 날은 ‘잘했어! 잘 이직했어!’하다가 어느 날은 ‘아.. 버겁다..’ 싶기도 하다. 직무도 새롭고 문화도 기존 회사와는 전혀 180도 달라서 모든 행동에 조심스러움이 베어 나온다. 평등해 보이지만 수직구조였던 전 회사와는 다르게 지금 회사는 놀라울 정도로 평등하고 서로의 피드백 문화가 활발하다. 교육을 받을 때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피드백 문화’에 감탄했는데, 직원 간에 활발하게 피드백이 오가는 것을 막상 보니까 난 저렇게까지 신랄하게 말할 자신이 없어진다.


영어는 또 어떠한가, 외국계 회사라 영어가 통용되고 관리자급들이 외국인이거나 해외에서 살다 온 경험으로 가득 찬 분들이다 보니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다시금 느끼고 있다. 물론 언어를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대학교 시절 짧게 어학연수를 다녀온 덕에 생활영어는 무리가 없다. 그러나 회사에서 관리자들의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거나 영어를 잘하는 동료들을 볼 때 기가 팍 죽는다. 입사를 한 후로 매일 아침 영어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지만 ‘이렇게 해서 언제 따라가나’ 싶기도 하다.


어제는 외국인 매니저가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너의 담당 매니저의 이름은 숀이야”라고 말했는데, 숀이라는 말을 ‘short’과 헷갈리면서 대답을 “why?”라고 한 것이다. 평소에 농담을 가끔 건네던 사이라 매니저는 내게 “왜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니 매니저가 숀이라는데.”라고 말했고 나는 그제야 “아, 내가 ‘short’이라고 알아들었어.”라고 답했다. 그 이후로 교육받는 내내, 오늘 아침까지 난 이 장면을 수업이 곱씹었다. ‘왜 못 알아들은 걸까?’부터 ‘내 영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라는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직을 하고 나서 나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것은 ‘사람들에게 멋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다. 완벽주의적인 면도 그런 욕심에서 시작된다. “그만 생각해. 별 일 아니야. 그리고 앞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돼”라고 생각하면서도 못내 그 장면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이마에 난 뾰루지처럼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 장면이 되었다.


그렇다. 나는 요새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그래서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저자의 저 구절이 마음에 팍 꽂히는 것이다. 태어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서 이 곳에 왔지만 생각보다 큰 균열과 틈, 어긋남 사이에서 방황하고 좌절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이 시간이 나를 성장시켜주고 있음을 안다. 예전 회사를 다닐 때는 집에 와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쇼핑을 하다 지쳐 잠들던 시간들을 ‘요가’ ‘명상’ ‘영어공부’ ‘코딩 공부’로 꽉꽉 채우고 있으니. 이 얼마나 기특한가!


나만의 속도로 가면 돼.

이 말을 주문처럼 자주 읊조린다. 주변의 동료 중에 너무 뛰어나 보이고 멋진 경력을 가진 분들을 보면 조바심이 난다. 마치 내가 어수룩하게 산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걸어온 길은 그 누구와도 다르다. 그렇기에 나만의 빛깔, 나만의 호흡을 갖고 차분히 하루하루 성실하게 가면 되는 것이다. 꾸준하게, 조급해하지 말고. 주눅 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들게 내린 결정이고 용기였다. 차장이라는 직함을 버리고 일반 직원으로 이직을 한 것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언어적인 능력도 포함되었다. 그러니 나의 모험에 박수를, 그리고 하루하루 성실히 쌓아가는 인생을 살아야지.


심호흡을 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그래,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담대하게,


내 속도로만 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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