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그렇습니다.
7년 동안 다녔던 회사였다. 업무가 매년 달라졌지만 새로운 업무를 맡는 걸 좋아하는 변태적 성향을 가진 터라 즐겁게 임했고, 무엇보다 착하고 열정적인 팀원들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했다. 그랬던 회사를 그만둔다.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업무 인수인계를 하는 한 달 동안 팀원들과 난 참 많이도 울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이직을 하나 싶나 싶었고, 감정이 혼란스러워서 모든 걸 물리겠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정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얼마나 힘겹게 내민 발걸음이었던가! 들으면 모두가 아는 유명한 회사여서 축하인사를 받았지만, 사실 연봉도 깎이고 가는 자리였다.
충동적이지도 순간적이지도 않았던 결심이었기에 이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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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때가 결정적인 시발점이었다.
코로나로 매출이 급감하자 팀장님은 매일 아침 9시, 팀원들과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시작했던 회의는 시간이 지나자 팀장님 혼자 20분 동안 떠드는 회의로 전락했다.
팀장님이 발언권을 줘도 모두가 말하지 않았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묘하게 아무도 말하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뭐가 문제일까’ 생각했다.
우선, 팀장님이 너무 말이 많다는 게 문제였다. 처음 회의 시작하면서부터 20분 동안 주야장천 자기 말만 쏟아내니 듣다 보면 내가 말할 타이밍도 잃을뿐더러 지쳤다. 이야기하라고 해서 이야기를 해도 증발되는 말들이었다. 목적지 없는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그래서 팀장님께 회의를 마치고 면담을 신청했다. 이런 이슈에 대해서는 불편해하시는 편이라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팀장님, 요새 회의하시면서 스트레스받는 건 없으세요?”
“아.. 괜찮아요. 근데 너무 말을 다들 안 하니까 좀 그렇긴 해.”
“그것에 대해서 제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요.. 아무래도 팀장님 직급이 높다 보니까 팀원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게 힘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팀장님은 회의에서 경청을 해 주시고 저나 부장님이 회의를 주재하는 건 어떨까요? 제가 더 가볍게 농담하면서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마치 내가 잘못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불편하긴 하지만, 그대가 좋은 의도로 말하는 걸 충분히 알아요. 그럼 내일 회의는 그대가 진행해 봐요.”
대략 요약하면 이런 대화였다.
다음 날 회의는 내가 진행을 하게 되었다.
그냥 말하자고 하면 다들 무념무상으로 참석할 걸 알았기에 안건을 사전에 던졌고, 한 명씩 생각한 것들을 이야기하도록 발언권을 줬다. 기분 좋은 회의 분위기를 위해서 개카리더십 (개인카드를 긁는)을 발휘해서 커피도 돌렸다. 1시간 40분 동안 치열한 회의가 진행되었다.
한 줄기 햇살이 비추는 회의였다. 회의를 마친 후, 연차여서 당일 사무실에 없었던 팀장님께 전화가 왔다.
“회의는 어땠어요? 부장님께 들으니 오래 했다던데”
“아, 네네. 팀원들이 잘 참여해서 회의는 잘 진행되었습니다. 저희끼리도 팀장님 계실 때도 이렇게 이야기하자고 말하면서 반성했어요.”
“좋네요. 그럼 다음 주에 봐요.”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 아침,
회의 시간에 팀장님 손에는 한 장의 종이가 들려 있었다. 지난주 내가 주재했던 회의의 회의록이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우리가 이야기했던 안건에 대해서 하나씩 팀장님은 반대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혼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여기 보니까 우리 팀만의 미션과 비전을 세워보자는 의견이 있네요. 좋죠. 미션과 비전. 저는 근데 그런 걸 세운다고 아이디어의 질이 좋아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팀의 미션과 비전이요? 돈 되는 사업이면 다 합니다. 그게 우리 팀의 미션과 비전이에요.”
7년 넘게 일했던 나의 업무들이 장사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팀원들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회의를 주재하겠다고 나서서 기분이 상했구나. 앞으로 주제넘게 조언 같은 거 하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차장이라는 직함으로, 중간관리자로서 이 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척 하지만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겠지만) 팀장님께는 자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맞춰 줄 피에로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 나처럼 주도적으로 이야기하고 반기를 드는 중간 관리자는 피곤한 것이었다. 내가 모시는 상사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게 싫었고, 여기에서 부장을 달고 승진을 해도 관리자로서 성장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윗분들이 내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어퍼컷은 다른 팀원에게 한 팀장님의 발언이었다. 전체 회의를 마치고 연이어 2~3명이 진행한 회의에서 팀장님은 이 질문을 했다.
“지난주 여러분들끼리 회의했을 때, 가장 말 많이 한 사람이 누구예요?”
둘이서 면담을 할 때, 팀장님이 회의에서 말을 하지 않는 팀원은 평균 이하의 능력을 갖고 있는 거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나는 개개인의 성향과 분위기에 따라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팀장님은 못내 불편해했지만 내 말에 수긍해 주는 척했다.
결국 자신의 회의 때 말을 안 하던 사람이 내가 주재한 회의에서 얼마나 말했는지가 궁금하고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속좁음과 통제하려는 태도가 숨 막혔다. 오랜 기간 일을 함께 해서 이미 그런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그와 함께 일하는 기간 동안 늘 이렇게 불편함 것이 뻔했다.
‘비상탈출 신호다. 이 곳을 탈출해야겠다.’
그 날 이후 진지하게 이직을 고민했고, 12년 연차로 이직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해냈다.
팀장님께 그만두겠다고 말할 때 이 사건을 말하려고 했으나 주변이 만류했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팀장님이 알아듣고 고칠 것 같아? 겨움아, 굳이 그렇게 해서 불편한 사이로 마무리 짓지 마.” 엄마의 말에 마음을 돌렸다.
그래도 팀장님 덕을 참 많이도 봤다. 이 조직에 입사하게 된 것도 팀장님의 오퍼였고, 중간에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퇴사하겠다고 했을 때도 윗분들을 설득해서 휴직 처리를 해 주면서 배려해 주셨고, 병가를 내고 한 달 쉬었을 때도 크게 불편하지 않게 배려해 주셨던 분이었다. 나라는 사람의 인격과 인생에 대해서 항상 부러움 섞인 눈으로 바라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아 주셨던 분이기도 했다. 그랬던 분과 이렇게 마지막을 하게 되니 만감이 교차했다.
- 관계라는 것은 생물적이어서 상하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기 때문에 늘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는 것.
- 리더의 자리는 실수를 용납할 수 없는 자리라 쉬 욕먹고, 팀원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것.
- 리더라면 팀원의 퇴사 사유가 조직의 문제점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시점이라는 것. 그것이 나인지 가장 먼저 의심하고 불편해도 받아들여야 할 것.
조직생활 13년 차, 이 곳에서의 마지막 시점에서 난 또 배운다. 퇴사를 해서 시원하기보다는 섭섭함이 더 큰 마음. 그것 또한 내 미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