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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라만차 Nov 01. 2023

흑백사진

그녀의 스토리


또독.


[ web발신]
 먼저 저희 통인물산 직원채용에 지원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안타깝게도 한지은 님께서는 불합격하셨습니다.
 금번 채용 시 귀하의 자질과 능력은 높게 평가...


'불합격이면 불합격인거지. 입에 발린 소리는..'


  이제 불합격 문자가 몇 번째 인지 세보지도 않는다. 아니 이렇게 불합격이라고 문자라도 보내주면 다행인 건가.


  까똑.


'딸. 오늘 회사 합격발표 어떻게 됐어?'

  내 문자를 보고 있는 건가, 어떻게 이렇게 불합격 문자를 받자마자 카톡을 보내는 걸까.


'안된 것 같아.'

'안된 것 같은 건 또 뭐야?'

'떨어졌다고.'

'어떻게 매번 떨어지냐. 너 자격증이 부족한 거 아니니? 다른 집은 회계 자격증 같은 것도 따서 취업한다던데'


  멍하니 카톡 화면만 바라본다. 회계 자격증 없다는 잔소리까지 듣는 지경에 와서야 지금 내 상황이 실감되는 것일까. 졸업하고 계절이 여덟 번 바뀐 지금까지 나는 취준생이었고 오늘도 취준생이다.





One of them


  처음에는 잘 될 줄 알았다. 지방 대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거점국립대 영문과에서 장학금도 받으면서 부지런히 공부하며 학점도 잘 받고 스펙도 쌓으면서 성실하게 공부했던 학생이었다. 그때만 해도 열심히 노력하면 하고 싶은 일을 다 해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적어도 이 정도로 취업시장에서 거부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학창 시절 나는 특별할 것이 없는 아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공부나 운동이나 음악이나 수준이 어중간하다고나 할까. 공부는 40명 중에서 10등이나 15등 정도 하는 그냥 그런 아이들 중에 하나였다. 예체능 분야도 엄마의 강요로 피아노도 배워보고 발레도 배워봤지만 그 수준이라는 게 지금은 취미랄 것도 못 되는 수준이다. 그냥 남들 하는 만큼 배우고 남들만큼만 공부를 했던 색깔 없는 그런 아이.


  생각해 보면 정말 착한 딸이긴 했었다. 착하다는 의미가 반항하지 않고 순응하고 고분고분하다는 의미에서는. 어린 시절 엄마는 늘 나에게 어떤 아이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지 엄마만의 방식으로 내게 강요했었다. 내 개성이 아닌 사회적 기준에, 엄마의 체면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 기대와 압박을 당연히 받아야 하는, 엄마에게 나는 당연히 그래도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내 역량은 엄마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바라던 만큼의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엄마의 기대치가 낮아지는 법은 없었다. 엄마의 기대치와 내 역량 차이는 내 낮아진 자존감만큼이나 넓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처음으로 엄마에게 반기를 들었다. 평생 나의 부족함이 미안해서, 아니 그런 엄마가 무서워서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살았었다. 그래도 내 진로는 내가 정하고 싶었다.


  학창 시절 내 꿈은 의상디자이너였다. 고사리 손으로 엄마옷을 이리저리 묶고 붙이고 꿰매면서 새로운 옷도 만들어 보고, 코 묻은 돈을 모아서 꽤 값이 나가는 디자인 잡지도 사서 봤었다. 의상디자인이라는 화려함 속에 있는 사람과 옷을 좋아했고, 그 사람과 옷 안에서의 이야기를 찾고, 만들고, 상상해 내는데 재미를 느꼈었다. 적어도 내가 즐거워한 것은 의상 디자인이었다.


용기를 내어 말을 해본다.

"엄마 나 의상디자인 공부하고 싶어."


"뭔 소리야. 의상디자인? 야 너 그거 하면 밥벌이는 하겠냐? 그리고 그거 하는 학교 인서울인데 니 성적으로 거길 간다고? 꿈도 크다야."


"아니 뭐 꼭 서울 아니더라도 수도권에 있는데도 있고, 대전 근처에도 있는데.."


"야 내가 너 그깟 대학 보내려고 뼈 빠지게 일하는 줄 아니? 헛소리하지 말고 여기 국립대 영문과나 경영학과 이런 쪽으로 가. 그런데가 취업도 좋고 너 같은 아이한테 딱이야."


"아니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아니 얘가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니. 참내. 야 엄마친구 승희 이모 기억나? 걔도 경상도 어디 있는 대학에서 의상디자인 전공해서 뭐하는지 아니? 여기 중앙시장에서 보세 옷가게 해. 너도 그렇게 될래?"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제게도 꿈은 있었습니다.


  좁다란 고시원 방이 오늘따라 더 갑갑하게 느껴진다. 울다 잠들었는지, 잠들다 울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어 있다. 불합격 문자만 가득한 스마트폰은 꼴도 보기 싫지만, 창문도 없는 두 평 남짓한 이곳에서 그래도 내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물건이다. 다섯 달도 더 된 유튜브 재생목록을 열어본다.


'낭만어부, 어부의 꿈이라..'


  어부의 꿈. 어부니까 만선이 꿈인가. 만선 해서 돈 많이 벌어서 토끼 같은 자식들과 여우 같은 마누라 호강 시켜주는 것이 꿈이겠지. 그래도 저 어부는 좋겠다. 꿈이 있어서.


  영상을 틀어본다. 




  피디가 묻는다.


"선장님은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어요?"


  선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더니 말한다. 

 "제게도 꿈은 있었습니다. 전 있잖아요. 국문학과를 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분노인지 슬픔인지 회한인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읊어가는 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한 잔은 떠나간 너를 위하여

 한 잔은 너와 나의 영원했던 사랑을 위하여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멈춰있는 재생목록을 멍하니 바라본다. 저 어부아저씨는 몇 년 동안, 아니 몇십 년 동안 그의 꿈을 가슴에 품고 숨기고 안고 살았을까. 나는 내 가슴속에 어떤 꿈을 품고 살았을까. 나도 꿈이랄게 있었나.



 <사람인> 어플을 켜본다.

 그동안 내가 즐겨찾기 했던 회사의 목록을 전부 지운다.

 통인물산, 삼일제지, 화승전자..


 그리고 새로운 검색을 한다.


 "의상디자인 인턴"








♣︎ 이 글은 픽션입니다.

   지난주 통인시장에 있는 흑백사진관을 지나다가 본 사진입니다. 슬픔 속에 아름다움이, 두려움 속에 당당함이 느껴지는 얼굴이었어요. 저 사진을 보고 떠올려본 저분의 스토리입니다.(실제와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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