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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작가 Aug 16. 2024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던 아버지의 어린 시절 1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해서 중간에 보여달라고 했지만

다 쓰고 보여주신다며 보여주지 않으셨다.


1차로 쓰신 글을 받아서 가져왔다.

이면지에 펜으로 쓰신 글이었고 필체 때문에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도 있었다.


종이 뭉치는 40장 정도였다.

 

어떤 이야기일까?

첫 장에 있는 이야기는

아버지의 아버지는 넥타이에 양복정장을 입으셨고 영국신사처럼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다는 것.

아버지의 아버지는 주벽이 심했고 집에 오면 늘 어머니를 때리는 일이 많았다는 것.

4남 6녀, 모두 10남매 중에 거의 막내였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

몇 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느 날 아버지 팔베개를 베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도 몰랐습니다.

그날도 술을 드셨는데 이빨을 빼고 난 후였는데

술을 많이 드셨답니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팔베개하고 돌아가신 것도 모른 채 베고 있었다는 기억 하나밖에 없습니다.


낯설고 슬픈 이야기 앞에서 가슴이 먹먹했다.

한편으론 뾰족한 바늘에 찔린 것처럼 불편하고 아팠다.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그때 마음은 어땠는지,

왜 한 번도 묻지 않았을까?


이렇게 글로 써서 보여주기 전까지

모든 이야기와 기억은

아버지 머릿속에, 마음속에 있었다.


이제라도 이렇게 밖으로 나온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짠하면서도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느 날 새벽,

대포소리, 요란한 행군소리

우리는 전부 집 방공호에 들어가 밖의 동태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결국 인천을 떠나 남쪽으로 피란을 떠나기로 결정했지요.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갔는데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기차 꼭대기 연결 부분, 발만 올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면

전부 사람이 매달렸습니다.

심지어 기관차에까지 사람이 꽉 둘러붙어

기차 색깔 검은색이 보이지 않고 사람들만 보였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기차 타고 가다가 죽는 사람이 반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걸어가기로 결정하고 한강 철교 다리를 건너오는데

철도 침목에 쌓인 눈이 미끄러워 디딜 수가 없어

난 결국 가방을 멘 형수님등에 올라앉아 철교를 건넜습니다.


어릴 때 전쟁을 겪은 세대,

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그 시대,

아파하고 주저앉아 있을 새도 없이

고생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 부모님 세대의 기억을 기록하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겠구나.


아버지의 글은 순서도 뒤엉켜 있었고

정리되지 않았지만 오래전 기억을 붙들어 꺼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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