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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숲 Feb 08. 2021

하늘을 날아오른 개미귀신



지난해 여름, 비가 많이 오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젯밤 무섭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갠 아침, 흙탕물이 얼마나 불어났는지 보려고 물 구경을 갔습니다. 어른 걸음으로 열 걸음 쯤 되는 좁은 개울을 흙탕물이 꿈틀거리며 기세 좋게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있는 오솔길 바닥은 넘쳐흐른 물살로 깊게 패였고요. 나무둥치를 단단히 덮고 있던 흙이 쓸려 내려가서 땅 아래 넓게 뻗은 나무뿌리는 토양의 단면을 따라 해쓱한 실핏줄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물의 위력을 보면서 자연의 힘이 놀랍고도 두려웠습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숲속의 그 곤충이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 되었습니다. 그 곤충들은 소나무 둥치 아래 한 뼘 정도 되는 나무 그늘에, 쉼터 마루 아래에, 벤치 아래의 모래땅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곳인데도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도록 캄캄하고 축축한 땅을 파고 들어가 하루 종일 사냥감을 기다립니다. 으스스한 곳에 사는 이 생명체의 이름은 개미귀신입니다. 개미귀신이라니 개미들의 염라대왕일까요?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벚나무 숲을 만나게 됩니다. 울퉁불퉁하고 거친 나무줄기들을 작은 곰개미들이 줄지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성실한 일꾼들은 잎자루의 꿀샘을 얻으려 부지런히 벚나무를 방문합니다. 개미들의 행렬은 대피소 추녀를 돌아 이어집니다. 나는 지붕 아래 그늘진 모래땅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두리번거립니다. 한여름 뜨거운 볕에 어느새 모래땅은 보슬보슬 말라있습니다. 앗, 찾았습니다. 움푹 팬 깔때기 모양의 구멍들이 처마 아래 모여 있네요. 비에 집이 무너져 버렸을 텐데 기특하게도 햇볕이 나는 짬을 이용해 수해복구를 마쳤습니다.    


엄지손톱만한 함정에 뾰족한 턱이 집게처럼 나와 있습니다. 모래 비탈 사이를 위태롭게 지나가던 개미가 구덩이에 그만 미끄러집니다. 개미는 언덕을 필사적으로 올라가려 하지만 개미귀신은 모래를 끼얹으며 개미가 탈출하는 것을 막습니다. 다시 밑으로 떨어진 개미를 무자비한 큰 턱이 단단히 붙잡습니다. 아이고, 이제 개미는 끝입니다. 개미귀신은 개미의 체액을 쭉 빨아먹고 껍데기를 함정 밖으로 던져버릴 겁니다. 이미 구덩이 바깥에는 희생당한 일개미들의 사체가 나뒹굴고 있습니다. 개미들에게는 이곳이 지옥입니다. 개미귀신이 파놓은 함정을 개미지옥이라고 부르는 까닭입니다.    


개미귀신을 모래 속에서 꺼내 평평한 땅위에 놓아두니 개미귀신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칩니다. 꼬리를 모래 속에 넣고 빙빙 돌면서 모래 속으로 숨어버리더니 얼마 안 있어 원뿔모양의 홀을 만들었습니다. 귀신이라는 무서운 이름을 가졌지만 엄지손톱만한 작은 벌레에 불과합니다. 온몸이 흙빛의 털로 덮여있고 뾰족한 가시가 듬성듬성 나있습니다. 흙속에 숨어있으면 개미귀신인지 흙덩어리인지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개미귀신을 관찰하던 어린이가 
 “귀신이 뭐 이렇게 조그맣고 못생겼어요?” 라며 실망한 듯 말합니다.
 “무섭게 생긴 곤충인줄 알았구나? 개미귀신은 개미 같은 작은 벌레는 사냥하지만 사마귀 같은 사나운 적이 나타나면 도망친단다.”

“계속 땅속에서만 살면 힘들지 않을까요?”

“얘는 어린 곤충이야. 가을이 오면 아주 다른 모습이 된단다.”

   

무덥고 습했던 긴 여름이 지나갈 무렵 산사나무 가지에 무언가 햇볕에 반짝이는 것이 보입니다. 저게 뭘까 가까이 다가가 보니 기다랗고 반짝이는 날개를 곱게 접은 명주잠자리였습니다. 얇은 날개 맥 아래로 배마디가 투명하게 비칩니다. 얼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커다란 두 눈이 까맣습니다. 명주잠자리는 여름내 내가 관심 있게 관찰했던 개미귀신의 성충입니다. 모래 덫 속에서 턱만 내놓은 채 숨어살던 그 작고 못생긴 벌레에서 날개달린 잠자리를 상상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뒷걸음질 쳐서 궁둥이 끝으로 흙을 파고 땅속으로 들어가던 개미귀신은 이제 날개를 팔랑거리며 앞을 향해 날아오릅니다. 명주잠자리가 살아갈 곳은 땅속에서 하늘로 바뀌었습니다.

   

명주잠자리의 변태(탈바꿈)는 겉모습의 변화와 함께 행동의 변화도 같이 일어났습니다. 땅속에서만 살면 답답하겠다고 걱정해주었던 아이가 명주잠자리를 직접 보았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자연을 깊이 들여다보면 더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이의 세상을 염려해주었던 아이가 자라서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될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듯 보이는 지점으로 도착할거라고 예측합니다. 그 곳에서도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고 놀라워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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